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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강론] 예수님은 섬기는 분이었기에 권위가 있었습니다.[2017년 1월 10일 화요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21 조회수931 추천수2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cotidie/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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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7 110일 화요일[연중 제1주간 화요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히브리서 2,5-12

화답송 : 시편 8,2ㄱㄴ과 5.6-7.7-9(◎ 7ㄱ 참조)

복음 : 마르코 1,21-28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7822&gomonth=2017-01-10&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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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미사 강론 : 예수님은 섬기는 분이었기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http://www.news.va/en/news/daily-homily-jesus-had-authority-because-he-was-a

 

2017-1-10 바티칸 라디오

 

(바티칸 라디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섬겼고 사람들과 가까웠기 때문에 그분께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왕자라고 여겼던 율법학자들과는 반대로 일관성이 있었기 때문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권위의 이 세가지 특성을 산타 마르타 아침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해 말했습니다. 교황 성하가 설명하기를 다른 한편 율법학자들은 성직자 중심주의자의 권위로 가르쳤습니다. 즉 그들은 사람들과 너무 멀리 있었고 그들이 설교한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와 바리사이의 권위는 각각 교황의 강론이 다루는 양극이었습니다. 하나는 진정한 권위였고 다른 하나는 그저 형식적이었습니다. 그날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가르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놀랐다고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사람들에게 권위자였지만 그들이 가르친 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권위를 갖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유혹하는 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마지막 지점까지 내려가 있는율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분은 진리를 가르치셨고 권위를 갖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은 섬겼습니다. 반면 율법학자들은 자신을 왕자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나서 교황은 예수님의 권위를 율법학자들의 권위와 구분 짓게 하는 세가지 특징에 초점을 맞추면서 상세한 내용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겸손함으로 가르치셨는데 그분의 제자들에게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가장 높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작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자기 자신을 왕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설명했고 사람들은 잘 이해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섬기는 자의 마음가짐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권위를 주었습니다. 반면 율법학자들, 사람들은그래요 그들의 말을 들었고 존경했지만 사람들은 율법학자들이 권위를 갖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왕자의 심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 ‘우리는 스승이고 왕자야, 그리고 우리는 너희를 가르치지. 섬기는 게 아냐. 우리는 명령하고 너희는 복종하는 거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결코 왕자처럼 행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모든 이를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분께 권위를 주었습니다.

 

예수님 권위의 두 번째 특징은 친근함입니다.

 

진실로 권위를 주는 것은 사람들과의 친근함입니다. 이렇게 친근함은 예수님의 권위를 바리사이의 권위와 구별 짓는 두 번째 특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알레르기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나병환자들과 병든 이들을 만지시는 일이 그분을 몸서리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설명했습니다. 반면 바리사이들은 가난한 사람들 무지한 사람들을경멸했고 그들은 멋진 옷을 입고 장터에 나가 거닐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과 떨어져 있었고 그들은 사람들과 가깝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 매우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권위를 줍니다. 사람들과 떨어져 있는 사람들, 율법학자들은 성직자 중심주의자의 심리였습니다. 그들은 성직자 중심주의자의 권위를 갖고 가르쳤습니다. ? 그것은 성직자 중심주의입니다. 복자 바오로 6 교황이 지녔던 사람들과의 친근함에 대해서 읽을 때가 저는 매우 좋습니다. 현대의 복음 선교 48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친근한 목자의 마음을 봅니다. 그것이 교황의 권위, 친근함을 발견하는 지점입니다. 첫째, 섬기는 종, 겸손함의 종입니다.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이며 그는 모든 것의 위 아래는 바꿔 놓습니다. 빙산처럼 말입니다. 빙산의 꼭대기가 눈에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대로 그것의 위 아래를 바꾸시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꼭대기에 있고 명령하시는 그분은 아래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래에서 명령을 하십니다. 두 번째, 친근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성직자 중심주의자의 태도는 위선적입니다.

 

한편 율법학자들의 권위를 예수님의 권위와 구별하는 세 번째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일관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께서 설교하신 대로 사셨습니다.” “그분께서 생각하셨고 느끼셨고 행하셨던 것 사이에는 어떤 일치와 조화가 있었습니다. 반면 자신을 왕자라고 여긴 이는 성직자 중심주의의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위선적입니다-어떤 것을 말하고는 다른 것을 행합니다.

 

다른 한편 이 사람들은 일관성이 없었고 그들의 인성은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라는 의미대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것을 말하고는 다른 일을 행했습니다. 일관되지 않음. 그들은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에 대해 자주 말씀하시는 자세는 너무나 자주 위선적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왕자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는 성직자 중심주의 자세를 가지고 있고 위선적인데 권위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진리를 말하지만 권위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면 겸손하시고 다른 이들을 섬기시고 친근하시고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지 않으시며 일관되시는데 그분께서는 권위를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느님의 백성이 감지하는 권위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여관 주인의 놀라움

 

강론을 맺으면서 교황은 이것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 착한 사마리아의 비유{루카 복음 10,29-37}를 상기시켰습니다. 어떤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만나 강도들이 그 남자를 초주검으로 만들고 떠난 것을 보고 사제는 지나가 버리고 계속 갔는데 아마도 피가 있었기 때문에 그 사제는 그가 그 남자를 만지면 자신이 부정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레위인도 지나가 버렸는데 교황이 말하기를 나는 그가 이렇게 생각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가 그 일과 연루되면 그는 그렇게 법정에 가야하고 증언을 해야 할 것이고 그래서 그는 할 일이 많아진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도 계속 길을 갑니다. 결국 사마리아인이 왔고 죄인인 그는 오히려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교황이 말했습니다. 바로 여관주인입니다. 그는 강도들의 공격으로 놀란 것이 아니라 그 길에서 일어난 어떤 일 때문에 놀랐습니다. 즉 사제와 레위인의 행동으로 놀란 것이 아닙니다. 그 여관주인은 그들을 알았으니까요. 여관주인은 사마리아인의 행동으로 놀랐습니다. 사마리아인에 대한 여관주인의 놀라움. “하지만 이건 말도 안돼그는 유대인이 아니야. 그는 죄인이야.” 여관 주인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놀라움을 그날의 복음에서 예수님의 권위를 마주 대한 사람들의 놀라움과 연결시켰습니다. 겸손한 권위, 섬기는사람들과 친근한 권위그리고 일관됨

 

 

(바티칸 라디오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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