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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3주일: 가해: 주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22 조회수1,052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3주일: 가해: 주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

 

오늘의 제1독서와 복음은 해방과 구원의 결정적 사건이 전개되는 지형적 동일성 뿐 아니라, 빛이라고 하는 상징적 개념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그 의 개념을 성탄시기 내내 그리고 지난 주일에도 다루었다. 오늘의 화답송도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라는 것은 생명, 행복, 구원, 기쁨 등의 의미로 빛이 없는 곳이란 생명도 안전도 성장의 가능성도 없다. 그러기에 어둠은 죽음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므로 1독서의 캄캄한 땅’(9,1)이라는 대목을 죽음의 그늘진 땅”(마태 4,16)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하느님은 생명과 구원의 원천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빛에 싸여 계신 분’, ‘빛 가운데 계신 분’(1디모 6,16)이시고 자체이신 분이시다.

 

복음: 마태 4,12-23: 예수님의 전도 시작

오늘 복음은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즉 예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가심(12-17); 첫 번째 제자들을 부르심(18-22); 예수님의 활동에 대한 간략한 요약(23)이다. 우선 예수께서 카파르나움으로 가셨다는 것은 그 지역이 옛날 즈불룬과 납달리 종족이 쫓겨나 있던 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사야의 예언(8,23-9,1)이 가파르나움에서 실현됨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라는 상징적 개념을 통해서 표현되고 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보는 그 은 정치적인 해방보다도 더 깊은 의미의 해방을 모든 인간들에게 가져다주시는 그리스도이시다. 또한 이 지역은 이방인들의 갈릴래아이방인들의 지역이다. 여기에 큰 이 비친다는 것은 예수께서 유대인들만을 위한 구세주가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자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가르쳐라...”(마태 28,19)고 하시지 않는가?

 

그 민족들을 비추던 큰 빛은 바로 그리스도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 역시 큰 빛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즉시 선교활동을 간략히 제시하고 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하고 말씀하셨다“(17). 즉 하늘나라는 이미 그리스도의 전도를 통하여 실현되고 있고 또 그분을 통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하느님의 왕권을 뜻한다. 그런데 이 하늘나라는 이미 이 세상에 생성되고 활동하고 있으며 종말의 상황에서 완성되게 될 것이다. 이제 이 하느님의 나라가 모든 인간들의 마음속에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우리 모두의 마음과 정신과 생활습관의 깊은 변화를 촉구하신다. ‘회개하라는 말은 인간의 내면으로부터의 완전한 전도를 뜻한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이고, ‘회개는 거기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아직 멀리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제 첫 번째 네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통해 회개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여주신다. 이스라엘의 스승들은 그들을 따르던 제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름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즉 제자들이 스승을 선택하여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제자들을 선택하신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분의 인격을 따르는 것이다. 그분은 제자들과 공동생활을 하시며 그들을 ’(요한 15,15)이 되신다. 마지막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여정을 다시 밟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첫 번째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뜻 용기 있게 한 대답 자체가 그들 마음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예수께 자신들을 온전히 의탁하기까지 점진적 과정이 있었다. 맨 먼저 그물을 버리고, 그 다음에 배를 버리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버지까지도 떠난다. 즉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것과의 결별이며, 더 나아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결별이기도 하다. ‘자기를 버리고이 모든 것은 우리의 존재 전체가 회개를 통하여 완전히 변화되어 다른 존재가 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제자들의 부르심의 깊은 의미란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빛에 내맡겨 그분을 따르기로 방향전환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모범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2독서: 1고린 1,10-13.17: 의견을 통일시켜 갈라지지 마십시오.

2독서에서도 회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순전히 개인적인 일 때문에 교회의 일치를 깨뜨리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교회 안에서 갈라지거나 대립된다는 것은 교회의 개념 자체가 파괴되는 것이다. 교회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한 을 이루는, 즉 그분의 이름과 권능 하에 모인 이들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실체이다. 어떤 한 개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회는 있을 수 없다. ‘불러모으시는 분이 오직 한 분 그리스도이시듯이 교회의 기초는 그리스도이시지(1고린 3,11) 어느 개인이 아니다.

 

그런데 교회는 역사를 통해 수없이 분열되어 왔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갈라놓았으며(13절 참조), 개인들이 즉 루터나 칼빈 혹은 칼 마르크스 등이 그들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만이라도 구원하고자 한다면 분열과 자멸을 초래하는 그러한 어리석은 행동으로부터 돌아서야한다. 2차 바티칸공의회는 참된 일치운동은 내적 회심 없이는 있을 수 없다”(일치 7)고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갈라져 있다는 것은 서로가 충분히 사랑하고 있지 않으며, 또한 그리스도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성부와 하나가되신 것처럼, 당신 제자들도 하나가되기를 기도하셨다(요한 17,21).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의 큰 빛앞에 진정 우리 자신의 내적인 변화를 통해 그분과 하나가 되어있는 삶으로, 그분과의 참된 친교를 갖으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님 안에, 그리고 그 말씀 안에 하나가 되어 진정한 형제애를 나눌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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