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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오직 십자가를 지겠다는 그 마음으로 /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25 조회수1,041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5-16)’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내린 사명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란다.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로 향해야 할 우리란다. 이렇게 보면, 복음 선포는 창세기 본디의 회복이다. 무엇보다 먼저 파괴된 인간성이 회복으로 우리가 올바른 눈과 가치관을 가질 때, 비로소 창조의 실상(實像)을 바로 볼게다. 그러면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 창조물의 손길을 볼 수가 있으리라. 그리고 자연은 더 이상 지배나 착취의 대상이 아닌,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임을 깨닫게 될 게다.

 

올빼미 한 마리가 어디론가 가던 중 비둘기가 묻는다. “어디로 가는가요?” “이곳이 싫어 동쪽으로 간답니다.” 힘없는 올빼미 대답에 비둘기가 이유를 묻자, 올빼미는 목쉰 소리로 답한다. “사람들이 내 울음소리를 싫어하기 때문이에요.” 그러자 비둘기가 또 달랬다. “거기 간들, 그곳 역시 당신의 그 소리를 싫어할 수도. 이 기회에 그 울음소리를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살다 보면 사는 곳을 옮기고 싶을 때가 있으리라. 무언가가 싫기에. 하지만 다른 곳으로 옮겨도 좋지 않은 모습은 만나게 될 게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도. 좋은 이도 자꾸 보면 단점도 보리라. 싫은 이도 자주 만나면 그 나름의 장점도 물론 본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 자신을 바꾸는 게 정녕 현명할 수도. 전교 역시 잘하려면 끊임없이 방법을 찾아야만. 싫어하는데도 성당 가자고 조르는 것만이 전교가 아니다. 이것은 울음소리를 들어 주지 않는다고 투정하는 올빼미와 다를 바 없다. 많은 경우 축복은 하찮은 일이 어떤 계기가 될 수도. 몰라서 하찮은 일이지, 실은 주님의 개입이 분명 있었을 게다. 그래서 전교는 주님이 하는 것이리라.

 

바오로 사도는 소아시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교육받은 유다인이었다.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그였으나,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극적으로 체험하고 회심한 뒤 되레 그리스도의 선교사로 변신하였다. 그날 그 길에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예수님의 당찬 목소리를 듣는 순간 대찬 그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회심은 획기적이고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는 교회 역사에 엄청난 지각 변동을 가져온다. 그는 많은 이방인을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게 하였다. 누구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악의 존재였으나 주님 현존을 체험하고는 복음 선포의 으뜸가는 사도가 되었다.

 

이 은총은 그 어떤 그리스도인에게서 찾을 수 없는 하느님의 크시고도 큰 자비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러한 큰 은총과 자비는 동시에 그만큼 커다란 십자가가 따른다는 것을 분명 의미한다. 하느님의 지혜는 세상 이들이 생각하는 지혜와는 다르니까. 바오로 사도는 우리 신앙은 하느님에 의한 예수님의 부활에서 드러난 그분 신비에 기초한 것이어야지, 인간적 지혜나 서툰 능력에 기초한 것이어서는 안 된단다. 만약 부활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지혜를 잊는다면, 우리는 신앙생활의 중심에 하느님을 저 멀리로 밀려나게 만들고, 오히려 욕심에 오염된 세속의 지혜를 우리에게로 오게 만들게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회개한 이들이 많다. 마리아 막달레나, 세관장 자캐오는 지상에서 예수님과 직접 만나서 이루어졌지만, 바오로 사도의 회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이루어졌다. 그것은 다마스쿠스에 살던 신자들을 잡아 예루살렘으로 압송하려던 청년이 빛이신 예수님을 신비롭게 만나 이루어진 회개였다. 그의 회심은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의 회심을 위함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온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 품으로 구원을 시키고자 그를 선택하셨다.

 

그의 회개는 스테파노 부제의 순교에서 이어졌다. 사울이라고 불렸던 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라는 그의 기도를 들었다. 그의 회개는 순교자의 희생에서 시작되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개종한 뒤 잃었던 영원한 생명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것은 고달픈 선교 여행과 순교의 고통을 포함한 십자가의 길에 있는 은총이었다. 십자가 없는 은총은 결단코 없다. 우리도 이런 은총을 주님께 바란다면 우선 걸맞은 십자가를 기꺼이 지겠다는 그 마음만은 꼭 가져야만 하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바오로 사도,회심,사울,다마스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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