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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 개의 깡통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28 조회수1,231 추천수7 반대(0) 신고


 

두 개의 깡통

 

- 윤경재 요셉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루카12,37~38)

 

 

 

속이 빈 깡통 두 개가 서로 대화를 나눕니다. 한 깡통이 말합니다. “내가 흐르는 저 강물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갔더니 이제 나는 신선한 물로 가득 찼다.”

 

이 말을 들은 다른 깡통이 자신도 목이 마른 차에 잘 됐다 싶어 강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숙이고 강물에 몸을 담가보았지만, 곧 떠오를 뿐 신선한 물을 한 모금도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돌아와 이렇게 외쳤습니다.

 

네 말은 모두 거짓이다, 강 속으로 들어가 가득 찬 물통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고 강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다른 깡통이 그런 말을 외친 까닭은 뚜껑을 열지 않은 채 강물에 들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빈 깡통이 머리를 숙이고 강에 들어갔더라도 열려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제 속을 비우고 또 겸손히 머리 숙여 실천했더라도 개방성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장자에 이런 우화가 실려 있습니다. ‘옛날 노나라 서울에 한 바닷새가 날아와 앉았다. 이를 안 노나라 임금이 이 새를 친히 궁궐 안 종묘에 데리고 와서 술을 권하고,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바닷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자기와 같은 사람을 기르는 방법으로 기른 것이지, 새를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기르지 않은 것이다.’

 

장자는 아무리 지극정성으로 대접해도 바닷새가 원하는 바를 살펴 지켜주지 못하면 결국 진정한 사랑과 보살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타자의 타자성을 살펴 지켜주는 것이 첫째라는 가르침입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종은 밖에 나갔다 돌아온 주인이 무엇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먼저 손을 씻을는지, 집안 식구 안부나 일이 잘 돌아가는 지 궁금해서 물을는지, 시장해서 밥상을 차려야 하는지, 아니면 배가 불러서 밥상을 차릴 필요가 없는지 그 상황을 미리 예단할 수 없습니다. 예단하고 한 가지만 준비해서는 종으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 자세가 올바른 태도일 것입니다. 밖에 나간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상관하지 않는 자세는 주인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기다리는 것이며, 상대방의 타자성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깨어 기다리지 못하고 잠을 자는 사람은 자신을 개방하지 못하고 뚜껑을 닫아 폐쇄상태로 지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방심과 무기력, 의혹 속에서 주인이 맡긴 한 미나를 수건에 싸서 보관했던 어리석은 종(루카19,20)과 같은 자일 것입니다. 그는 주인에게 ‘저자에게서 그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가혹한 말처럼 들리지만, 결국 자신이 되기를 포기한 사람이 받는 댓가입니다.

 

이처럼 깨어 기다린다는 것은 상대의 타자성과 주체성을 함께 인식하고서 먼저 자신을 열고 다가가는 행위입니다. 나만의 생각과 나만의 자아를 주장하여 상대와 부딪치는 것이 아닙니다. 통념과 습속에 젖고, 무엇보다 자기 관심에 갇혀 있는 한 타인의 얼굴이 보일 리 없고 전체를 향한 책임 또한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을 향해 타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으면서도 전체를 보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려는 자세를 갖추기를 예수께서는 바라셨습니다. 그런 사람은 첫번째 깡통처럼 신선한 생수를 자신 안에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깨어 기다릴 때 주인은 띠를 매고 나서서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시중을 들며 함께 식사를 나눌 것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행복은 나 홀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깨어 주인과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늘 깨어 내 안에 계신 성령과 교류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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