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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 4 주일: 가해: 산 위에서의 가르침: 가난! / 조욱현 토마스 신부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29 조회수1,502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 4 주일: 가해: 산 위에서의 가르침: 가난!

 

오늘 전례의 중심 주제는 산상수훈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중에서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이다 1-2 독서가 함께 이 행복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복음은 진정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

 

1독서: 스바 2,3. 3,12-13: 가난한 사람만을 네 안에 남기리라

1독서는 야훼께서 오실 날있을 대소동에 관한 것을 전하고 있다(1,14-18). 그 날 야훼께서는 야훼를 믿었던 비천하고 가난한 사람들만이 화를 면하고 모두가 화를 입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 가난한 사람들이 바로 야훼께서 다시 양육하실새 백성의 가 될 것이다. “너희는 야훼를 찾아라”(2,3)는 말은 회개의 권고이다. 진정한 회개만이 야훼의 날에 화를 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훼께서는 거만을 떨며’ ‘흥청거리는 자들을 정의로 다스리시고, 그분은 오로지 가난하고 순박한 정신으로 그분께 나오는 모든 이에게 마지막 날에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이다.

 

1독서에서는 가난의 의미가 단순한 사회학적 의미에서 영적차원의 의미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가난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바쳐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판단에 신뢰심을 갖고 자신을 내맡기는 하느님 안에서의 완전한 자기 포기를 말한다. 이러한 가난은 회피해야할 저주스러운 것이 아니라, 도달해야할 높은 목표이다. 바로 이 가난이라는 것은 항상 정의즉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의무와 결합되어야 한다. 이렇게 겸손하고 가난한 사람은 살아남게 되고’, ‘야훼의 이름만 믿을 것이고’(3,12) 또한 불의한 짓을 범하지 않고 거짓과 사기를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3,13). 여기서 가난하다는 개념과 겸손하다는 개념은 일치한다. 이 개념을 통해 예언자들은 메시아를 예고한다(즈가 9,9 참조).

 

복음: 마태 5,1-12: 산상 수훈

오늘 복음의 산상수훈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고도 극적인 삶으로 사신 것들이다. 산상수훈 하나하나를 그분의 삶을 통해 입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산상수훈은 모든 윤리규범을 초월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정상적 지혜가 부서지고 만다. 그 지혜는 하느님 앞에서 어리석은 것’, 우리 자신이 회개할때만이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이 산상수훈의 메시지는 회개에 대한 권고(마태 4,17 참조)를 받아들였거나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를 갖춘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산에 올라가셔서(1), 산 위에서 법을 가르치는 모세처럼 군중들을 가르치신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은 바위에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1고린 3,3 참조)에 새겨진 그리스도인의 새 으로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 산상수훈은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가난해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고, 박해를 받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위해 박해를 받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10). 이 모든 것은 우리 모두가 회개하여이루어야 할 최상의 목표라고 하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3). ‘예루살렘 성서는 이 구절을 가난한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으로 훌륭히 번역하고 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은 제1독서의 가난의 영적인 차원에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가난의 덕이라는 것은 비록 우연히 소유하였을지라도 재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난한 정신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의 지적인 능력, 사고, 계획, 우리의 성성까지도 포함하여 우리가 선익을 위해 소유할 수 있는 그 모든 것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하느님께 의탁함으로써 그분을 통해 자신을 무한히 부요하게 하고, 또 그분이 베풀어주시는 모든 선물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가난하건 부요하건 상관없이 다른 모든 행복을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첫 번째 행복의 정신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은 집착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해방되어 있느냐, 그리고 그럼으로써 하느님을 통해 부요해지고 그분께 받은 선물을 나눌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근본적인 회개가 있어야 한다. “회개가 있는 곳에서는 현세생활의 물질적 선에 대한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이러한 변화가 그리스도교 사상의 특성이다”(1978. 1. 11. 수요담화문)라고 바오로 6세 교황은 말씀하셨다.

 

2독서: 1고린 1,26-31: 하느님께서는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다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시는 것이것이 인간의 오만과 자만심의 틀을 뒤엎으시는 하느님의 변함없는 모습이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고린토 신자들에게 세속적인 견지에서 보기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그들을 하느님께서 불러주셨음을 상기시키면서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속적인 견지에서 볼 때에 여러분 중에 지혜로운 사람, 유력한 사람, 또는 가문이 좋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었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 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자들을 택하셨으며...”(26-30). 이것은 모든 선이 하늘로부터 오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마치 자기 스스로 부요한듯이 여겨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31)라고 한다.

 

가난한 정신은 모든 행복의 근원이 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가난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빈부에 아무 관계없이 가난하건 부요하건 모든 재물에서 집착을 버려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 앞에 올바른 회개를 통하여 그분으로 부요해지고 그분께로부터 받은 선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그런 마음이다. 이러한 나눔을 통하여 자기만족이나, 자만심에 빠지지 않고, 즉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며 그분을 자랑하는 삶이 되어야만 되도록 노력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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