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가난은 행복의 필요조건
작성자김리원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29 조회수1,773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7년 가해 연중 제4주일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


복음: 마태오 5,1-12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


엘 그레코 작, (1600-1605),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옛날 한 욕심 많은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웠으나 정욕이 강하고 음탕하여 시어머니의 눈초리가 귀찮아, 하루는 꾀를 내어 남편에게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이렇게 가난하면서 어머니를 돌봐 드리는 것이 더 이상 효도가 될 수 없겠어요. 하늘나라에서 돌봐드리게 하지요.”

며느리는 남편에 동의를 얻어 큰 잔치를 벌여 하루를 즐겁게 지내고 손님들이 돌아간 뒤 노모를 불구덩이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런데 불구덩이 속의 틈사이로 요행이 빠져나온 노모는 어둠에 깔린 밖에서 도둑을 만나 나무 위에로 몸을 숨겼습니다. 마침 나무 밑에서 몸을 쉬려던 도둑은 나무 위에서 나는 기척에 혼비백산 하여 훔친 보물도 팽개치고 달아나버렸습니다.

날이 밝자 노모는 나무에서 내려와 그 보물을 들고 집으로 집에 들어섰습니다. 노모를 본 부부는 무서워서 벌벌 떨었으나 노모는 태연히 말을 했습니다. 천상에서 수많은 친척들을 만나 이런 진귀한 선물을 얻었지. 내가 기력이 딸려 다 못 가져왔는데 이번에는 너를 보내달라는 구나.

이에 며느리는 무척 기뻐하며 자신도 불구덩이에 몸을 던질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졸라 불구덩이를 만들고 그 속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나오지 못했습니다.

 

참 어이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며느리가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지금 정선 카지노가 있는데 심지어 이런 말까지 돈다고 합니다. 그 동네 주변 숙소에서 목매달아 죽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달 쉬었다 가라고 누가 말한다면 그것은 장기를 적출해 팔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장기를 판돈으로 다시 도박을 하러 간다는 것입니다. 저도 마카오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실로 카지노 호텔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입니다. 보통 하나를 짓는데 10조 정도가 드는데 대부분은 짓고 나면 3년이면 투자를 회수한다고 합니다. 그런 호텔카지노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잃어주고 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호텔 주위에 깔린 가게들이 전당포입니다. 처음에는 귀중품이나 차와 같은 것을 맡기지만 나중엔 집과 목숨까지도 담보로 잡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다 알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어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백억씩 잃고 간다고 합니다. 도박해서 부자 됐다는 사람은 못 봤지만 그런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마치 불나방이 자신이 타 죽는지도 모르고 불에 달려드는 어리석은 인간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아무리 해봐야 자신이 깊이 깨닫지 못하면 쓸데없지만, 모든 인간은 욕망 때문에 노예생활을 하고 자유와 행복을 빼앗깁니다. 도박에 빠진 사람이 행복한 얼굴을 할 수 있을까요? 그는 노예이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이런 돈에 대한 욕망만 우리를 행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모든 욕망이 인간을 불행의 노예로 만들어 종살이의 고통을 줍니다.

며칠 전 출출하여 야식을 먹으로 한 식당에 갔는데 늦은 시간임에도 한 남성 어르신이 혼자 식사를 하시며 일하고 있는 여 주인과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약주도 한 잔 하시고 이미 거나해진 그분은 제 착각일 수는 있지만 주인아주머니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아주머니는 단골손님이기 때문에 억지로 받아주고 계신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가시면서 그 아저씨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미친놈이다. 내가 미친놈이여. 허허. 밥을 한 그릇 다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네. 그러니 내가 미친놈이지. 허허.”

이건 누가 봐도 배가 고픈 상황이 아닙니다. 욕망에 허기가 진 것입니다. 그런데 욕망에 허기가 지는 곳이나 음식이 들어차는 곳이나 같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욕망의 배고픔을 음식의 배고픔으로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욕구가 솟구치면 배가고픈 줄 알고 계속 먹어대지만, 마치 목이 마른데 음식을 자꾸 먹는 것처럼 그 갈증이 해소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 그런 욕망이 해결된다고 고통이 끝날까요? 돈을 땄다고 더 이상 돈을 바라지 않게 될까요? 더 욕망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가 더 돈을 욕망합니다. 왜냐하면 돈 맛을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벌들이 기를 쓰면서 자녀들에게 세금 안 내고 그 재산을 물려주려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정치와 결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도 벌어지게 됩니다. 지금 국정농단 사태도 돈을 몰랐던 순수한 사람들에게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맛을 누리던 사람들에게서 시작된 것입니다. 욕망엔 끝이 없다는 것은 더 이상 말을 안 해도 우리 스스로도 잘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욕망이 커지면 그것에 노예가 되고 그 만족시켜주지도 못하는 욕망 때문에 고통스러워야 하는데도 그 욕망을 쫓아가는 사람이 많을까요? 이 또한 경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욕망을 끊는 자유와 평화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이 욕망이 솟구치고 그것을 채워가는 것이 행복이라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일단 욕심을 버리고 소득의 십분의 일이라도 봉헌해 봤어야 거기서 오는 마음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성경에서 아무리 십분의 일은 주님의 것이고 그것을 내지 않으면 마치 선악과를 먹는 것처럼 하느님 재산을 도둑질 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드라마를 보며 어떤 누군가가 멋지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되면 행복할 것이란 생각에 빠지는 수많은 사람들과 같습니다. 그런 욕망이 생기는 것 자체가 고통임에도 그런 욕망이 생기도록 더 TV앞에 앉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나라는 행복입니다. 행복은 가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가난은 돈 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욕망이 비워진 상태를 가난이라 합니다. 욕망이 비워져야 그 안에 주님께서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뱀이 있는 곳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부산행이란 영화에서 주인공 공유는 딸에게 선물을 사 줍니다. 그러나 그 선물은 이미 작년 생일 때 해 주었던 것과 똑 같은 것이었습니다. 자녀는 사랑의 눈빛을 원하지만 다른 것을 원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자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사도란 영화에서도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아버지에게 사도세자는 그저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밖에는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욕망을 지니고 있으면 하느님을 믿는다고 해도 자신의 가정이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꼭두각시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 욕망과 함께 공존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누가 이용당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하물며 하느님이신데 말입니다.

불교에서도 이를 알아서 집착을 끊는 것을 행복의 기본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교회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거든 자신을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버리라는 말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버렸고 그 결과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욕망으로 아랫배가 가득 차게 되면 숨이 그 밑에까지 내려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배로 숨을 쉬지 못하고 가슴으로 쉬게 됩니다. 배가 비워지는 것을 우리는 가난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배가 두둑하니 부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잃기 싫으니 두려워지게 되고 더 움켜쥐려고 하는데 그 결과가 숨을 다 내뱉지도 않고 또 들이쉬는 것입니다. 욕망이 커지고 두려움이 커지면 숨을 몰아쉬게 되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는 숨을 있는 끝까지 내 뱉으며 자신의 욕망까지 함께 내 뱉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힘들이지 않아도 공기가 들어옵니다. 배가 따듯해야 온 몸으로 열이 전달될 수 있고 장기도 따듯해져 병에 걸리지 않으며 허하지 않습니다. 가난해져야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것이 의미가 큰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왜 만드셨을까요? 부모가 자녀를 왜 낳을까요? 행복하라고 낳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의 행복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희생할 자세가 되어있습니다. 혹 인간인 부모가 그럴 준비가 안 되었을지라도 사랑 자체이시고 우리 아버지가 되시는 하느님은 무든 준비를 다 해 놓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세상에 내신 이유는 바로 행복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처럼 복음을 선포하실 때 가장 처음으로 행복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선포하실 때 가장 처음으로 가난을 강조하셨습니다. 스스로 행복해지려는 마음만 버리면 다 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마치 아이가 가출만 하지 않으면 부모가 다 해 주겠다는 뜻과 같습니다.

고해소에서 어떤 분이 자신은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을 절대 믿지 않겠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분이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면 아직도 부자로 불행하게 사실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숨을 거두실 때 마지막으로 숨을 내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숨을 들이쉬기 위해서는 먼저 내보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설 때 절대 부자여서는 안 됩니다. 마지막 한 숨까지도 내보내고 가야합니다. 욕망을 빼내는 것이 가난입니다. 가난한 사람 안으로 성령께서 들어오셔서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하면서 나의 욕망을 빼버리는 연습을 규칙적으로 가져야합니다. 뱀은 결코 죽지 않고 다시 독을 내 뿜습니다. 규칙적인 기도가 아니면 욕망에 금세 사로잡힙니다. 먼저 내가 어떤 것에 욕심이 생기게 되면 다시 하느님 나라가 들어올 자리를 빼앗긴 부자임을 깨달읍시다. 그리고 기도로 나의 욕망을 시키고 빼어버립시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루어내시는 일을 보며 주님께서 우리를 왜 창조하셨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왜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 묻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미 주님께서 세상에 우리를 살게 해 주신 삶의 이유인 행복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