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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9.♡♡♡ 참행복을 찾아 - 반영억라파엘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29 조회수2,359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4주일(마태5,1-12) 

 

            

 

참 행복을 찾아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한 주간 행복하셨습니까? 날이 좀 풀렸습니다. 마음도 따뜻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행복에로 초대하십니다. 이 시간 참된 행복에 대해 묵상하는 가운데 행복에 행복을 더하시기 바랍니다.

 

 

 

조기 대선을 기정사실화 해 놓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명절민심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여론이 바닥을 쳐도 내려놓을 줄 모르고 자기최면에 빠져 자기가 최고라고 합니다. 진정 새벽을 일깨우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어느 당에 속할까요? 저는 여당도 야당도 아닙니다. ‘천주당’입니다. 그래서 이 쪽 저쪽 다 얘기할 수 있습니다. 국민을 위한 봉사를 빌미삼아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문제고, 뜻을 달리한다고 매장되는 현실도 안타깝습니다. 지배하고자 하는 욕심, 높이 오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명예는 물론 모두를 잃어버리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것은 다 지나가고 하늘의 것만 남는다는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소유와 지배를 통해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러나 참된 행복은 거기서 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서 옵니까? 참된 행복은 천상의 것을 추구하는 데서 옵니다. 많은 성인들은 하느님 곁에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느님 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 이 몸 둘 곳 야훼 하느님뿐, 나는 좋으니 하시는 일들을 낱낱이 이야기 하오리다.”(성녀 젤뚜르다) “하느님을 뵈려고 애쓰고, 하느님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할 때가 행복의 순간입니다.”(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은 알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며, 이 모든 것을 모르나 하느님을 아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성 아우구스티누스)

 

 

 

 

 

결론적으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란 하느님에 대한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자신 안에 모신 사람입니다.”(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하느님을 모시고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행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차지하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어느 날 병원에 봉성체를 하게 되었는데 환자분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더니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고통 중에 있지만 예수님 때문에, 그리고 신부와 딸, 아내 덕분에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기 암환자나 불치병에 걸려서 오랜시간 치료를 해야 하는 사람들 중에 치료를 중단해야 할 때가 오는데 제일 먼저 중단하자고 요구하는 사람이 사위나 며느리, 다음이 아들이나 딸, 그리고 마지막이 아내나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의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말씀해 드렸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째거나 서로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자관계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은 하느님아버지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죽기까지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부부간의 관계는 요셉과 성모님의 관계입니다. 의로움의 요셉과 철저히 순명하고 ‘비천한 여종의 신세를 돌보셨다’고 고백하는 겸손한 여인으로서의 마리아 관계가 모범입니다. 서로간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며 살면 고통 중에도 행복합니다. 서로의 존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여덟가지 행복에 대해 가르칩니다. 간략하게 묵상해 보겠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가난은 베푸는 마음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도 또 주고 싶은데 더 줄 것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마음의 상태가 마음의 가난입니다.

 

 

 

 

 

여러분은 가족을 위해 또 이웃을 위해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경제적인 능력도 없고 건강도 없어서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건강이 없다고 하더라도 줄 것이 있습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저는 유서를 쓴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 유서를 하나는 자동차 오른쪽 함에 그리고 하나는 제 방에 있는 책상오른쪽서랍에 놓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갑자기 죽음에 이르면 그것을 보고 처리해 달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제 안구와 장기를 필요한 사람에게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제 통장에 들어있는 돈이 있다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 우선적으로 써달라는 내용입니다. 누구나 죽음에 이르러서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 있습니다. 줄 것이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은 없습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고 했습니다.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 그 이면에 있는 사랑을 생각하며 나도 그러한 마음으로 이웃의 아픔에 동참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잃으면 주님만을 잡게 됩니다. 그러니 행복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온유는 흔들림이 없는 상태 입니다. 어떤 처지나 상황 여건에도 꿋꿋하게 하느님 편에 서있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를 해보면 금방 압니다. 성당에도 보면 그룹을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파’가 있습니다. 대파, 실파, 양파, 쪽파....있듯이 신부파, 수녀파, 회장파,...사람을 따라가며 사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따라’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의로움에 주린 사람은 행복합니다. 의로움은 단순히 정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의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입니다. 그러므로 정의는 사랑을 포용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정의를 포용합니다. 따라서 사랑 안에서 나오지 않은 정의는 진리가 아닙니다. 의로움은 성경의 요셉의 삶에서 드러납니다. 약혼자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시의 법대로 하면 마리아는 돌팔매질로 죽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마리아를 배려했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메시지를 따라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습니다.

 

 

 

 

 

저에게는 조카들이 있는데 큰 조카는 공부를 잘해서 서울의 유명대학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가 학과 대표직을 맡고 정의구현에 앞장섰던 때가 있습니다. 그는 데모하는 학생들의 앞에 섰습니다. 그것도 몽둥이를 들고. 어깨도 다쳤습니다. 결국은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고 저는 삼촌으로서 그에게 반성문을 요구하고 그것을 가지고 판사를 찾아가 사정하며 제가 교육을 시키겠다고 해서 옥살이를 면했습니다. 어깨를 다친 것이 불행이었지만 병원치료를 위한 치료 때문에 교도소에 가지 않은 것은 은총이었습니다.

 

 

 

정의를 부르짖으며 몽둥이를 들었으니 어찌 정의구현을 하겠습니까? 의로운 방법으로 의로움을 구해야지 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어찌 의로움의 열매를 맺을 있겠습니까? 의로움은 사랑 안에서 나오는 것이고 상대를 위한 배려입니다.

 

 

 

 

 

자비로운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자비는 사랑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요한사도는 말로나 혀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 표현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그 행위가 자비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행위야말로 자비로움의 절정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평화는 단순히 평온한 상태를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순교성인 성녀들은 박해와 죽음 앞에서 마음이 시끄러웠을까요? 혼란스러웠을까요? 그들은 평화로웠습니다. 목숨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주님을 증거하는 도구로 쓰임 받는다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차지했기 때문에 육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평화를 누렸습니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진리를 증거 하다 보면 기득권의 반대에 부딪치고 미움을 사게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진리 안에 머물게 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지금의 순간을 모면하려고 하면 더 큰 것을 놓치게 됩니다. 끝까지 참고 기다리며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 알게 모르게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시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더 주님께 매달리고 의탁하여 행복을 지켜야 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주님을 차지하면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한 주간 주님을 마음에 모심으로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는,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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