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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31 화/ 인간성을 회복시켜주는 믿음과 분별있는 사랑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30 조회수1,510 추천수5 반대(0) 신고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 마르 5,21-43(17.1.31)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마르 5,36)





The Healing Touch and the Woman with a Hemorrhage






인간성을 회복시켜주는 믿음과 분별있는 사랑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여자를 고쳐주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열두 살 된 딸을 소생시켜주십니다. 여성성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실상 죽음 상태에서 있었던 두 사람의 여성성을 회복시켜주신 것입니다.

하혈하는 여자는 긴 세월 숱한 고생을 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나빠진 채(5,26) 부정한 여자 취급을 받았습니다(레위 15,24-25). 성전에 들어갈 수도 유대인들의 축제에 참여할 수도 없었던 이 여자는 여성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남자로부터 버림받은 채 살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딸아”라고 애정어린 호칭으로 부르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마르 5,34) 하시며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의 옷을 만진 많은 사람 중에 믿음으로 옷자락을 만진 그 여자만이 치유를 받은 것입니다(5,30-31).

한편 회당장 야이로는 딸을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딸에게 무의식적으로 사로잡혀 딸이 나이를 먹어감에도 자기 슬하를 떠나서 스스로 인생을 선택하고 젊은 처녀로서의 여성적인 능력을 해방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는 딸을 "제 어린 딸"(5,23)이라 하며 소유욕에 가득 찬 사랑을 했고, 모성애가 강해 무의식적으로 어머니 역할까지 떠맡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야이로의 열두 살 먹은 딸은 적령기가 다가왔음에도 자기 여성성을 드러낼 수 있는 무대에 들어서지 못한 채 죽은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부분적인 사랑의 대상이 되고, 유아적인 사랑에 삼키워진 채 마음 놓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도 아버지의 품을 떠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간 것입니다. 소녀의 죽음은 아버지의 소유욕과 애착의 결과인 셈입니다.

소유욕과 무의식적인 고착과 애착으로 형성된 딸에 대한 야이로의 왜곡된 사랑은 딸의 죽음으로 변곡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철저히 의존되어 있던 사랑스런 딸의 죽음은 그의 잘못된 사랑과 의식이 죽는 계기가 됩니다. 명망이 높고 부유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이 남자의 절망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 아이를 소생시켜주십니다(5,41-42).

열두 해 동안 하혈하던 여자와 야이로의 딸 모두 여성들의 사회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야이로의 딸은 주체성을 지닌 어엿한 여성으로서 그 사회에 들어가지 못했고, 하혈하던 여자는 불결한 사람으로 취급받아 배척당했습니다. 이들은 전혀 다른 처지에 있었지만 여자로서는 완전히 무력하여 이미 죽음을 살았던 것이지요. 예수님의 치유와 소생은 기적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간성을 온전히 회복시켜주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에 비추어 우리도 배척을 당하고 소외되어 여성성이나 남성성이 멈춰버릴 때 확고한 믿음으로 주님께 의탁해야겠습니다. 나아가 애착과 소유의 왜곡된 사랑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주체성을 얽매는 일이 없어야겠지요. 또한 너무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사랑을 하도록 마음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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