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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가 불을 밝혔느냐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31 조회수1,457 추천수10 반대(0) 신고



 

누가 불을 밝혔느냐

 

- 윤경재 요셉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탈리타 쿰!” (마르5,30.34.41)

 

 

 

사람은 평생 단 하나의 병만을 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하나의 취약한 부위가 방아쇠가 되어 다양한 병들이 줄지어 변주되기 때문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점을 체질로 판단합니다. 체질 치료에는 자신의 병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삶의 근본적 태도변화가 따라야 치유됩니다. 병의 증상만 쫓다가는 평생 다양한 질병의 그림자와 싸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치료와 치유라는 용어도 명확하게 구분하면 약간 다른 뉘앙스가 있습니다. 치료는 외부에서 도움으로 병이 개선되는 것이며, 치유는 자기 몸 안의 능력을 정상상태로 만들어 병을 이기는 힘을 얻고 다시는 병에 걸리지 않는 몸으로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치료는 일회적일 수 있으나 치유는 근본적 변화입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하는 여인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 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습니다. 동정이나 연민만으로는 여인을 치료할 수 없었습니다. 전혀 다른 방식의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인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은 예수님의 행적을 듣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겉옷에 닿기만 하여도 자기 병이 나을 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런 행위가 얼마나 위험하며 무모한 짓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살짝 예수님 겉옷에 손만 대려고 한 것입니다.

 

레위기 15장에 여자가 월경을 하면 이레 동안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녀가 앉았거나 눕거나 혹은 손만 닿아도 다 부정한 상태가 되어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러고도 이레 동안 기다리다가 여드레째 되는 날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사제에게 가서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한 마리는 번제물로 바칩니다.

 

레위기 53절과 6절에는 사람 몸에 있는 부정한 것, 곧 그것이 무엇이든 그를 부정하게 하는 것에 몸이 닿고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다가, 그 사실을 깨달아 죄인이 되었을 경우, 그는 자기가 죄를 지었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런 다음 주님에게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 작은 가축 가운데에서 암컷을, 곧 암양이나 암염소 한 마리를 속죄 제물로 바치는데, 사제는 그 죄 때문에 그를 위하여 속죄 예식을 거행해야 한다.” 라고 합니다.

 

이 율법에 따르면 하혈하는 여인이 옷에 손을 댄 것을 밝히는 순간 예수께서도 죄인이 되었으니 속죄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이런 사실을 크게 공표하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이 대목을 그리스어로 원문으로 읽으면 그 뜻이 새롭습니다. ‘누가 내 겉옷과 접촉해서 (불씨를) 밝혔느냐?’입니다. 유다인에게 겉옷은 그 사람의 직위, 권위를 상징합니다. 또 ‘손을 대다라고 번역한 그리스어 동사는 hapto 인데 어원이 부싯돌로 불을 붙이다. 촛불을 밝히다.’입니다. 영어로는 touch(접촉하다), kindle(불붙이다)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촛불 의식을 거행할 때 심지를 맞대어 불씨를 이웃에게 옮기는 장면을 연상하면 됩니다. 그러면 금세 촛불에 불이 옮겨 붙어 온 방이 환해집니다.

 

예수께서 하혈하는 여인에게 이 말씀을 들려주셔서 당신 권능의 불씨가 여인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여인은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몹쓸 병이 나은 연유를 알겠으며, 병이 뿌리째 뽑혀 온전히 치유되었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자신 안에 잠자고 있던 치유의 능력이 예수님의 부싯돌에 의해 점화되었던 것입니다. 어둠 속에 헤매고 있던 몸과 마음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빛의 세상으로 빠져나온 것입니다.

 

연이어 예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능력이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여인의 믿음이 자신을 구원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한 겸손의 말씀이 아닙니다. 새로운 가르침을 열어주는 복음 말씀입니다.

 

인간 개개인 안에는 창조주 성부께서 마련하신 생명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원리를 어둠 속에 가두어 두고 고통 받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힘을 믿음으로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믿음을 촉발시키셨을 뿐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넣어주신 게 아니라는 걸 천명하시는 겁니다.

 

믿음은 완성된 상태로 누가 넣어 주는 게 아닙니다. 어떤 계기로 스스로 싹을 틔우고 가꾸어 나가며 성숙하여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믿음의 겨자씨는 이미 하느님께서 온 천지에 뿌려 두셨습니다. 우리 안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작은 씨앗이 심어져 있습니다.

 

자신 안에 생명과 빛의 원리가 심어 있으며 그것을 꺼내 밝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과 빛이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각자에게 다시 골고루 나누어 주시길 원하셨습니다. 나누시기 위하여 스스로 쪼개지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 신비입니다. 쪼개진 예수님의 생명과 빛이 바로 살아계신 성령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하혈하는 여인의 부정 탓에 예수께서도 오염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광명한 빛은 절대로 오염되지 않습니다. 어둔 방에 촛불 하나를 켜면 온 방이 환해집니다. 촛불을 끄지 않는 한 어둠이 다시는 덮치지 못합니다. 빛이 어둠을 제거하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스러져 가는 촛불을 다시 밝히려면 심지를 곧추세우면 됩니다. 사람들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숨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안목이 달랐습니다.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탈리타 쿰!” 쿰은 세우다, 일어서다는 뜻입니다. 스러진 생명과 빛의 심지를 곧추세우니 12살 소녀는 잠에서 깨듯 일어났습니다.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12,46)

 

우리는 그동안 어둠 속에 살았으면서도 어둠을 몰랐기에 몸과 마음에 온갖 질병을 달고 살아온 셈이었습니다. 우리가 앓는 단 하나의 병이 바로 어둠이며 빛의 결여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치유 받은 여인과 잠에서 깬 12살 소녀처럼 생명의 부싯돌을 켜 어둠 속에 머물었던 자신을 깨우고 빛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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