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2.3 금/ 늘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행동함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02 조회수1,242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4주 금, 마르 6,14-29(17.2.3)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마르 6,16)





The Death of John the Baptist






늘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행동함

 

세례자 요한의 수난과 순교를 전하는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태도에 주목해 봅니다. 당시는 기원전 1세기경부터 시작된 하스모니아 왕가의 처절한 왕위 쟁탈전의 연장선상에 있었기에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했고 로마제국의 힘을 빌어야 할 만큼 국력도 약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헤로데는 “군중이 요한의 말을 듣고 매혹되어 모두 그 주위로 모여들었고, 요한의 권고에 따라 무엇이라도 할 것 같았으며, 요한이 그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폭동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요한을 없애버리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여겼습니다.”(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고사)

더구나 요한은 여덟 번이나 결혼하여 열 명의 부인을 거느린 헤로데 왕의 잘못을 고발함으로써(6,18) 그의 미움을 샀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고 하였고, 그의 지적에 당황해 하면서도 그의 말을 기꺼이 듣곤 했습니다(6,20). 그러나 명예욕과 권력욕에 사로잡혀 체면을 중시했던 그는 자기 스스로를 속이며 요한의 처형을 허락해버립니다.

요한의 죽음은 이 세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전형적인 삶의 모순입니다. 헤로데가 지녔던 권력욕, 이해타산, 무딘 양심, 비굴함과 우유부단, 명예욕, 죄악과 불의의 묵인, 세속적인 사고방식 등은 무죄한 자들을 짓밟는 폭력을 초래합니다. 불의와 횡포, 죄악 앞에서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이 거짓과 탐욕과 체면 때문에 짓밟히는 것은 더욱 슬픈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한편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6,19) 헤로데가 자기 생일 잔치에서 참석한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에게 과시하려고 헤로디아의 딸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청하라고 합니다. "무엇을 청할까요?”라고 묻는 딸의 말에 헤로디아는 서슴지 않고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라고 합니다.

헤로디아는 자신이 미워하던 요한이 아예 눈앞에서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던 터였습니다. 사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어둠과 영혼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는 요한을 죽임으로써 결국은 자신의 죄악을 완전히 덮어버리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큰 착각임을 알지 못했지요.

내가 저지른 죄악은 내가 미워하는 대상이나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외부 환경의 변화나 제거로 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지요. 거짓과 죄악은 부인하고 덮는다고 사라질까요? 내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마음을 고쳐먹고, 생각과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내 안의 어둠과 고통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헤로디아는 결국 자신의 죄악을 직시하지 않고 회피하며 무고한 요한을 희생양으로 삼아버린 것입니다.

우리 모두 헤로데처럼 인간적인 권력과 명예, 탐욕에 사로잡혀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자신의 안위에 연연함으로써 하느님의 정의와 진리를 거스르지 말아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매여 하느님을 망각하는 영적 치매에 떨어지지 말아야겠지요. 또한 헤로디아처럼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보다는 영혼의 어둠과 고통을 덮으려 다른 이들에게 투사함으로써 더 큰 죄악을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