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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2.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03 조회수1,797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7년 2월 3일

연중 제4주간 금요일

제1독서 히브 13,1-8

형제 여러분,

1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2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

 3 감옥에 갇힌

이들을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억해 주고,

학대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
4 혼인은 모든 사람에게서

 존중되어야 하고,

부부의 잠자리는

더럽혀지지 말아야 합니다.

불륜을 저지르는 자와

간음하는 자를 하느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5 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그분께서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는

 분이시니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7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복음 마르 6,14-19

그때에

14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헤로데 임금도 소문을

듣게 되었다.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는 엘리야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

하였다.

16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
17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18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19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20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21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22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

 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23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

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

24 소녀가 나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무엇을 청할까요?” 하자,

그 여자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하고 일렀다.
25 소녀는 곧 서둘러

 임금에게 가서,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청하였다.

26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27 그래서 임금은

 곧 경비병을 보내며,

요한의 머리를 가

져오라고 명령하였다.

경비병이 물러가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28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자,

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그 뒤에 요한의 제자들이

소문을 듣고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무덤에 모셨다.

언젠가 어떤 청년으로부터

“신부님처럼 저도 책을 내고 싶어요.”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면 글을 매일 쓰고 있니?”

라고 물었지요.

글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당연히 글 쓰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시험을 통해 합격을

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일 열심히 공부해야만 가능합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닐 수 있어야 합니다.
커다란 목표에 단번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자그마한 것도 소홀히 하지 않고

충실하게 임했을 때 어느 순간에

 목표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마치 로또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노력 없이 목표에 도달한

나를 꿈꿉니다.

로또 복권에 당첨될 확률이

 1:8,145,060이라고 하지요.

 이렇게 희박한 확률을

따르는 것은 지혜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희박한 확률을

따르는 모습이 바로 아무런

노력이나 정성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얻고자

하는 욕심이 아닐까요?
신앙인은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느님 나라의

삶이 로또 복권에 맞는 것처럼

커다란 운에

의해서 결정될 수 없습니다.

꾸준히 노력하고 성실히

주님의 뜻에 맞게 생활했을 때

 가능합니다. 즉,

 죄를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아주 엄격한

도덕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실 가족의

 타락한 윤리 형태를

엄중히 경고했을 것이고,

이런 이유로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왕실 가족에 대해 좋은 말을

하지 않는 세례자 요한이 눈에

가시처럼 보였겠지요.

그래서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헤로디아가 이 세례자 요한을

없애고자 했지만,

결정권자인 헤로데는

의로운 세례자 요한을

차마 제거하지

못해서 주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헤로디아 딸의

춤에 대해 헛된

맹세를 하게 됩니다.

이 헛된 맹세가 바로

아무런 죄가 없는 세례자

요한을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자그마한 헛된 맹세가 하느님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을

취하는 커다란 죄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작은 죄라 할지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지요.

 자그마한 죄라도 어떻게든

멀리하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작은 죄라면서 별 것 아닌

 것이라면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 작은 죄가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큰 죄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신 자그마한 사랑의

실천을 꾸준히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몸도 내 몸같이
소중히 여기라.
내 몸만 귀한 것이 아니다.
남의 몸도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일을 네가
먼저 그에게 베풀어라.
(공자)
가시관. 삶의 자그마한
가시관을 기쁘게 쓰고 있을까요?
"자신만의 세계"
어렸을 때부터 자립심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 말을 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이 자립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혼자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함께 더불어 사는 이 세상이기에,
 ‘자립’이라는 이름으로 혼자서
모든 것을 독불장군처럼
한다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요?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야 할 때에는 의지할 줄
아는 것도 분명 필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는
의지할 수 없을 때가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을 받아들이면서,
혼자서도 견딜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자립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레오 버스카글리아’라는
교육학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의지할 수 있은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자립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냥 무작정
의지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의지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스스로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면
의연하게 자신에게 처한
상황을 잘 대처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내 자신만의 세계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서울 대교구 주교좌 성당인 명동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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