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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소한 것도 소중히 여기시는 분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03 조회수1,529 추천수5 반대(0) 신고


 

사소한 것도 소중히 여기시는 분

 

- 윤경재 요셉

 

 

헤로데는 이러한 소문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되살아났구나.” 하고 말하였다.(마르6,16)

 

 

 

작년에 온 국민의 눈길을 TV화면에 사로잡았던 드라마가 생각납니다. 드라마를 즐기지 않던 저도 본방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할 정도였습니다. 분쟁 지역에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된 특전사 장병들과 민간 의료봉사단이 지진피해 현장에서 보여주는 활약상을 무대로 하고 감초처럼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겻들인 태양의 후예입니다. 싱싱한 대사와 멋진 풍광을 그려낸 장면이 어우러져 매회 몰입하였습니다. 새로운 유행어가 여러 개 탄생했죠. OST 음악도 완성도가 높아 인기를 끌었습니다. 극적 재미뿐만 아니라 진정한 애국심이 무엇인지, 인류를 위한 봉사와 희생정신이 어때야 하는지를 감칠맛 나게 버무려 나타낸 수작이었습니다. 디테일이 생생하게 살아나 있었습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실제 모델인 특전사 부대는 이라크에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되었던 자이툰 부대입니다. 미국 국방부 장관이 전 미군에 대민작전은 한국 자이툰 부대처럼 하라.”라는 지시를 내릴 만큼 칭찬받은 부대입니다.

 

평화유지군이나 지역재건을 맡은 군대의 첫 번째 임무가 주민 동화라고 합니다. 해당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은근하게 또는 적극적으로 나의 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지역 치안을 유지한다거나 구호물품을 제공하는 것이 주요 활동이었으나 이제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경찰력처럼 보여 역효과가 난다고 합니다. 무언가 물리적이고 강제적인 모습이 보이면 주민동화는커녕 등을 돌려 적으로 만들기 십상이라고 합니다.

 

미국 중심주의의 첨병이며 세계경찰을 자임해온 미군이 전투교범에 미국은 중심이 아니고 기준도 아니다라고 명시하면서 미국인의 생각이 더 이상 세계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과 문화를 역지사지 하여 받아들이고 존중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미군이 대민작전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해당 지역 문화와 풍습을 연구한 전문가들을 파견했고 지역발전을 위한 각종 건설 활동을 했으며 마을 대소사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자이툰 부대는 파견된 지 몇 개월 만에 주민들과 이웃과 같은 관계를 맺었습니다.

 

미군은 자기도 모르게 강자 위치에서 주민들을 포용하고 베풀려는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미국적인 것을 노출하지 않고 주민들을 이해하는 척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군은 그와 반대로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기인 태권도와 씨름을 가르치고 붕어빵을 구워서 나눠주는 등 한국적인 문화와 풍습을 보여주며 주민들에게 오히려 적극적으로 다가갔습니다. 동등한 우정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보여주었습니다.  

 

대민접촉 시에도 가능하면 고위직이 나가 그들을 존중한다는 느낌을 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군은 그들 특유의 실용주의적 관념이 몸에 밴 탓에 실무자급이 나가 접촉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현지 사람들에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점령군처럼 보였던 미군과 달리 한국 자이툰 부대는 한국적 감성을 드러내며 디테일에서도 섬세하게 지역 주민들에게 다가갔던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헤로데는 두 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셨을 때 유다 땅을 지배했던 자는 헤로데 대왕이며, 그의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고 십자가 신비를 드러내시며 부활하셨을 당시 갈릴래아 지방의 영주였습니다. 헤로데 가문은 유다인 혈통이 아니었습니다. 이두매아 출신 귀족으로 로마에 유학하여 안토니우스와 동문수학한 인연으로 거금을 뇌물로 주고 유다 땅의 왕권을 차지한 헤로데 대왕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혈통 콤플렉스와 반란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았습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가차 없이 죽여 버렸습니다. 마태오복음서 216절에 베들레헴 땅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죽이는 이야기도 이에 비롯하였습니다.

 

권모술수에 능한 헤로데 대왕은 유다인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딴 헤로데 성전을 지어주었으며 유다인 혈통 하스모네아 가문의 공주 미리암네와 정략 결혼하여 아들들을 낳았으나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고 의심하여 다 죽여 버렸습니다. 이 혈통의 손녀가 헤로디아입니다. 그가 AD4년 병으로 급사하자 유다인들은 하느님께 천벌을 받아 그렇게 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정치적으로 성공한 아버지를 닮고 싶었습니다. 엄부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그는 내면에 분노를 안고 살았습니다. 남의 눈을 의식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못한 억울한 심정이 앙금으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중인격을 보입니다. 겉으로는 원만하고 점잖아 보이지만, 집에 가면 폭력 남편으로 또 폭력 아빠로 변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남들은 전혀 뜻밖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그들은 외면과 내면의 갈등을 만만한 상대에게 분풀이하는 못난이일 뿐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남들이 자신을 좋게 본다고 여기기 때문에 자신이 벌이는 폭력이 정당하다고 판단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큰 범죄를 벌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버지 업적을 따라하려고 갈릴래아 호수 근처에 로마 티베리우스 황제의 이름을 딴 신도시를 지어 바쳤습니다. 그러나 유다인 공동묘지 터에 자리를 잡았던지라 유다인에게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디테일에 세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도 유다혈통인 헤로디아와 정략적으로 재혼하여 살로메를 딸로 받아드렸습니다. 조카이자 제수였던 헤로디아도 전 남편인 필립보가 무능해 보이자 내치고 삼촌인 안티파스와 재혼한 것입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셈이었습니다.

 

헤로데 가문은 이렇게 유다인들에게 여러 가지 횡포를 부렸습니다. 점령군의 행태를 최악으로 보였습니다. 그 극치가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벤 사건입니다. 헤로데 안티파스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세례자 요한이 되살아난 것이라 여긴 것은 자신도 아버지처럼 천벌을 받아 급사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창조주 성부와 성자께서 피조물인 인류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모습은 아주 달랐습니다.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무한한 사랑입니다. 뭇 천사를 파견하신 게 아니라 최고의 권위를 지니신 아드님을 직접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송구스럽게도 인간을 친구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인간의 세세한 점까지 다 헤아려 주시고 참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께서 작은 데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살펴주신 바대로 점령군의 행태가 아닌 이웃과 우정을 나누며 사는 모습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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