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4주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04 조회수1,782 추천수7 반대(0)

질풍노도(疾風怒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일컬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기도 합니다. 두려울 것도 없고, 거칠 것도 없고, 원하는 것들을 이루려고 하는 시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때로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를 하기도 하고, 무모하기도 하지만 열정과 패기로 주변을 뜨겁게 달구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사회에서 이런 모습을 2002년도에 보았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2002년 한일 월드컵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들었고, 우리 축구팀은 16강을 넘어서 8강은 물론 4강까지 거침없이 달렸습니다. 우리선수들은 질풍노도와 같은 힘으로 매 경기를 거침없이 달렸고, 사람들은 거리에서, 학교에서, 성당에서도 신나게 응원을 하였습니다. 거리는 차를 위한 공간이 아니고 사람들의 열정이 드러나는 자리였습니다. 광장은 텅 빈 곳이 아니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함성이 들리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어서 제게도 질풍노도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청년들과 밤을 새워서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신학서적을 읽었고, 현실의 문제들을 함께 고민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차를 몰고 동창신부님들과 주문진까지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가기도 했습니다. 풍랑이 거세거나, 바람이 불면 그냥 돌아와야 했지만 서울을 떠나는 것이 즐거웠고, 차 안에서 서로 고백성사를 보기도 했습니다. 적성 본당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거의 600킬로를 운전하기도 했습니다. 주님께서 든든하게 뒤를 지켜주신다고 생각하니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체력도 뒷받침이 되었습니다.

 

한국사회도, 한국교회도 고령화 되어간다고 합니다. 물리적으로 거스르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고, 우리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신앙 안에서도, 삶의 순간에도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75살이 넘어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세도 불같은 젊은 시절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80살이 되어서 모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었습니다. 요한 23세 교황께서도 77이 넘으셨지만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시작하였고, 교회의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80살이 넘으셨지만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사제는 양 냄새가 나야 합니다. 거친 흙이 묻더라도 교회는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린 아직도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무뎌진 마음에 열정의 불꽃을 피우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도들은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었고,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변하였고, 사도들도 변하였고, 새로운 세상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로 이루어지는 세상이 아닙니다. 신분과 학력 그리고 능력으로 평가받는 세상이 아닙니다. 하느님나라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모든 것을 녹여내는 그런 세상입니다.

 

오늘 성서 말씀도 질풍노도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신학생 때 저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말이 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쇄신되어야 합니다.(Ecclesia Est Semper Reformanda!)" 핸드폰을 매일 충전하듯이, 자동차에 기름을 채우듯이 교회는, 신앙인은 매일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돌아보면 많이 느슨해졌습니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라고,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후배들에게 맡겨도 된다고 핑계를 되는 것 같습니다.

 

언제가 신문에서 읽은 글입니다. “春蠶到死絲方盡(춘잠도사사방진) 蠟炬成灰淚始乾(납거성회루시건)” 뜻풀이는 이렇습니다.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뽑기를 그치고, 초는 재가 되어서야 눈물이 그친다.’ 누에도 죽을 때까지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초도 눈물이 마를 때까지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다시 질풍노도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함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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