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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서는 맥락으로 읽어야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06 조회수1,382 추천수6 반대(0) 신고


 

복음서는 맥락으로 읽어야

 

- 윤경재 요셉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6,54~56)

 

 

 

 

오늘 복음 부분을 읽다보면 무언가 평소와 다른 맛이 느껴집니다. 왠지 밋밋하고 담담하다는 느낌이 들죠. 병자를 고쳐주시는 게 주제라면 마르코복음서가 보여 주는 전형적인 요소가 다 생략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구체적 인물, 주변 사람들의 반응,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 등에서 다른 부분과 차이가 납니다.

 

가장 큰 차이는 문장의 주어가 예수님이 아니라 사람들입니다. 동사도 5가지가 나오는데 사람들이 알아보고, 뛰어다니며, 눕혀, 데려오기, 청하였다입니다. 예수께서 한 일은 전혀 없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그저 이 마을 저 마을로 들어가신 것만 나옵니다.

 

왜 다른 부분과 차이가 나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복음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맥락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복음서를 문자적으로 읽다보면 이런 지점에서는 수박겉핥기가 되기 십상입니다.

 

마르코복음 630절부터 723절까지를 문단 나누기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파견한 사도들이 돌아오자 외딴곳에 보내심

2.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

3.제자들은 벳사이다로, 예수님은 산으로 헤어짐

4.호수 한가운데 갇힌 제자들과 호수 위를 걸어가시는 예수님

5.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6.겐네사렛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임

7.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과 논쟁하심

8.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9.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비유설명

 

아홉 개 부분 중에서 가운데인 5.‘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가 소주제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세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사도들과 제자들,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 전통을 고수하려는 고집쟁이들 등입니다. 그런데 복음서저자는 이 세 부류 모두 예수님께서 가리켜 보이고자 하신 의도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였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 중심 단어가 완고함입니다.

 

사람들은 피상적으로 자기 필요에 의해 예수님께 모여들었으며 많은 병자들이 구원을 받았지만, 근본적 변화와 회개에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유다인은 사람이 세 층위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육체와 정신과 영혼이 그것입니다. 신약성경도 이 세 분류에 충실히 따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세 부류 즉 사도들과 제자들은 영을 대표하고, 사람들은 육체를, 고집쟁이들은 정신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영과 육체와 정신이 모두 한 결 같이 회개하고 바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하늘나라를 이룩할 수 있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마르코복음서 저자도 이 가르침을 어떻게 하면 충실하게 우리에게 전달할지 고심하였습니다. 그 흔적이 오늘 복음 대목입니다. 그래서 다른 치유기적 이야기와 확연히 차이 나도록 기술하여 우리가 눈치 채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막연히 비슷한 치유기적이겠거니 하고 넘긴다면 우리는 복음말씀의 진수를 놓쳐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영과 육체와 정신이 모두 바뀌어야 전인적 변화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칫하다가는 영만 바뀌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몸과 정신이 따라와 주지 않으면 그 변화의 힘이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몸까지 바뀌는 걸 마르코와 마태오복음서 저자는 산위에서 예수님 모습이 바뀌는 장면을 설명하며 변모(metamorphethe)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글자 그대로 형태가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22,37)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마태22,29)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8,33)

 

정신은 생각을 좌우합니다. 정신이 바뀌면 생각도 바뀝니다.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바로 하느님의 일만을 생각하고 사람의 일은 배제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저지른 짓을 반복해서 따라하는 잘못입니다.

 

복음서를 맥락으로 읽을 때 오는 참맛은 참으로 깊고 오묘합니다. 특히 마르코 복음서는 맥락적 구조가 철저합니다. 마치 건축가가 세밀한 설계도를 그려놓고서 집을 짓는 것 같은 치밀함이 보입니다. 초보 입문자를 위한 복음서라는 느낌 탓에 소홀히 여길 수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매력은 굳건한 바위 위에 훌륭한 건축물을 짓는 장인이 되어서 내게 전해져 온 설계도면을 세심하게 살펴보는 데 있습니다. 저자의 숨소리 하나 땀방울 하나를 공유한다면 저자가 체험했던 주님의 모습이 우리 앞에 생생하게 살아날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완고함에서 벗어나 영과 육체와 정신을 모두 바꾸려는 각오로 예수님께 달려가고 있는지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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