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2.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06 조회수2,399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7년 2월 6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제1독서 창세 1,1-19

1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3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4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가르시어,

 5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첫날이 지났다.
6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물 한가운데에 궁창이 생겨,

물과 물 사이를 갈라놓아라.”

 7 하느님께서 이렇게

궁창을 만들어

궁창 아래에 있는 물과

궁창 위에 있는

물을 가르시자,

그대로 되었다.

 8 하느님께서는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9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곳으로 모여,

뭍이 드러나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0 하느님께서는 뭍을

땅이라, 물이 모인 곳을

바다라 부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1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싹을 돋게 하여라.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땅 위에 돋게 하여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2 땅은 푸른 싹을

돋아나게 하였다.

 씨를 맺는 풀과 씨 있는

과일나무를 제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1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궁창에

빛물체들이 생겨,

낮과 밤을 가르고,

 표징과 절기,

날과 해를 나타내어라.

 15 그리고 하늘의 궁창에서

땅을 비추는

 빛물체들이 되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16 하느님께서는

큰 빛물체 두 개를 만드시어,

그 가운데에서 큰 빛물체는

낮을 다스리고 작은 빛물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리고 별들도 만드셨다.

17 하느님께서 이것들을

하늘 궁창에 두시어

땅을 비추게 하시고,

18 낮과 밤을 다스리며

빛과 어둠을 가르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9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나흗날이 지났다.

복음 마르 6,53-5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우리나라에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는 직원 전원이
로봇인 호텔이 생겼다고 합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직원들이
 처우 개선이나 연봉 인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육아 휴직이나 병가 등을
내지 않을 테니 훨씬
매력적일 것 같습니다.
더욱이 작년에 있었던
구글 딥마인드라는 ‘알파고’와
 인간의 바둑 대결로 인해서
로봇 역시 높은 지능으로 생각과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지요.
그래서 인간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직업의 3분의 1일을
로봇에게 빼앗기고 심지어
전문 일자리까지
잠식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편리함과 생산성 그리고
유용성까지 주는
로봇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이
 모든 인간들에게
반드시 필요할까요?
 우선 인간의 일자리를
잠식함으로 인해
이 안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분명히 생길 것입니다.
경영자 몇몇의 만족을 위해서
대다수가 아픔과
 상처를 받는다면
분명 필요한 상황이 아닙니다.
따라서 무조건 편리함과 생산성,
그리고 유용성 등의 쉽고
편안한 것들을 추구하는 것은
그리 옳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삶 안에서
쉽고 편안한 것을 계속적으로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노력도 없이 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며,
 특별한 운이 자신에게만
계속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누군가가
아픔과 상처를 받을 수
있다면 분명한 잘못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오셨던 그 상황을 떠올려
보셨으면 합니다.
 왜 굳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을까요?
그냥 알아서 해주시면
당신도 편하고,
우리도 편하지 않을까요?
왜 힘든 길을 직접 선택하셔서
하느님께서 인간으로부터
죽음을 당하셔야 했을까요?
어쩌면 편하고 쉬운 길만을
선택하지 말라는 주님의
직접적인 모범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도 한 번에 단박에
이루어지는 것,
그냥 알아서 나에게
좋은 것은 다 달라는
마음 등을 통해서는
주님의 사랑을 제대로
느낄 수도 없으며,
이러한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서 소외되는
그 누군가가 분명히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쫓습니다.
그런데 그냥 쫓는 것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이라도 대려고 노력합니다.
리고 실제로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고 전해줍니다.
그들의 간절함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간절함 없이 예수님을
쫓았던 사람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부정적인
 모습만을 바라보면서
 나중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편하고 쉬운 방법으로만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나의 간절한 노력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시행착오를
겪은 뒤 깨닫는다.
이 깨달음이 모여
인생의 지도를 만든다.
인생이란 지금 발을
내디딘 현실에 맞게
머릿속 지도를
수정해 가는 과정이다.
(고든 리빙스턴)
공룡 로봇이 체크인을 받는 로봇호텔입니다.
"엄마의 한마디"
(최천호)
어느 가족이
주말에 야외로 나갔다.
아들이 자동차를 보더니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자동차 바퀴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예요?"
아빠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첫 번째. 연료가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바꾸어
자동차가 움직이는데...'
아무래도 이건
 아들에게 답해주기
좀 어려운 것 같았다.
'두 번째. 우리가 밥을
먹어야 막 뛰어놀 수 있듯이
자동차도 엔진이라는 곳에
기름이라는
밥을 주면 움직인다.'
이건 자상한 아빠의
대답인 것 같은데
뭐가 좀 허전한 것 같았다.
궁리만 하는 아빠가
답답했는지 아들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자동차 바퀴는
어떻게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자 엄마는
단 한마디로 끝내 버렸다.
"빙글빙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는
어머니의 대답이 어쩌면
주님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눈높이에 맞춰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나의 이웃들에게
 이렇게 눈높이를 맞추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오늘 축일인
나가사키의 바오로 미키 성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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