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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7 화/ 긍정의 힘을 넘어선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06 조회수1,843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5주 화, 마르 7,1-13(17.2.7)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마르 7,8)





The tradition of the elders






긍정의 힘을 넘어선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씻는 인습에 관한 논쟁(1-7절)과 코르반 인습에 관한 말씀(9-13절)을 통해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에 따라 사는 유대인들의 삶과 그리스도교인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가르치십니다. 오늘 말씀에 비추어 나는 어떤 시각을 지니고 살아가야 할지 성찰해보았으면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고,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았다며 따집니다(7,2.5). 유다 전통에 따르면 식사 전에 손을 씻어야 하고, 장터에 다녀왔다면 몸까지도 씻어야 했기 때문이었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7,8)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물품을 하느님께 바쳐 사람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크르반 서원’을 악용하여 부모 봉양을 저버리는 행동을 지적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리는(7,9) 행위를 질책하십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에서 벗어나 재물을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착오를 지적하신 것이지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믿음이 없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전통과 형식, 율법준수에는 몰두하면서 사랑을 상실해버린 것입니다.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태도, 자기 기준에 따른 긍정의 시각과 긍정의 힘에 대한 의존이 문제였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참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요?

자신이나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긍정의 힘을 키우는 것이 나쁠 리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무관하게 인간의 가치에 근거하여 오직 자아계발이나 자신의 성공적인 삶만을 지향한다면 바리사이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느님을 믿는 이들은 이런 흐름과 사고를 잘 식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의미이신 하느님께 뿌리를 두지 않은 긍정의 힘을 키워간들 영원한 행복을 만날 수 있을까요? 긍정적 사고로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것은 일시적일 뿐입니다. 나만을 위한 긍정적 사고는 결국 무신론적 자기만족과 이기적인 행복에 지나지 않으니 헛되고 헛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자기 자신의 성공과 만족, 또는 사람을 제외한 율법의 준수에 초점을 둔 빗나간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만을 위한 긍정의 힘에 의존하지 말고,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뒤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하시고 “복을 내려주신”(창세 1장)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좋으심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타적인 긍정의 결정체인 하느님의 사랑이야말로 모두를 살리는 궁극적인 힘이지 않습니까. 내가 정한 기준과 세상 가치에 따라 긍정적으로 생각함으로써 생기는 ‘플라시보 효과’를 과신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세상과 인간에서 출발하는 긍정적 사고를 마치 행복을 보장해주는 열쇠나 상처를 없애주는 진통제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 뿌리를 두고, 하느님 때문에, 하느님을 향한 긍정의 힘과 사고와 시각을 지니도록 힘쓰는 지혜로운 우리였으면 합니다. 궁극적 의미요 긍정의 샘이신 하느님의 좋음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함으로써 세상 한복판에서 행복의 샘물을 퍼올리는 오늘이길 희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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