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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2.1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10 조회수1,450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7년 2월 10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제1독서 창세 3,1-8

1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8 그들은 주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과 그 아내는

주 하느님 앞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복음 마르 7,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예전에는 어린이를 만나면

이런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 친구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들은 되고 싶은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뭐가 되어야 하는데요?”
이러한 대답에

 ‘아이들이 꿈 없이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과 함께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저의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깨닫습니다.

뭐가 되어서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소위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살지 못해서

사회 전체가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되고 싶어 하는

부러운 위치에 올라와 있지만

지금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나요? 아닙니다.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 안에서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서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 새벽 일찍부터 거리를

청소하시는 환경미화원이

길에서 주운 돈 가방의 주인을

찾아준 사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돈에 이름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남몰래

취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곧바로

경찰서를 찾아가

 주인을 찾아주었지요.

이 분의 정직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분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인

환경미화원을 어렸을 때의

 장래희망으로 꿈꿨던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분의 정직한

행동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직업으로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사랑과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이 사회의

꿈나무인 어린이들에게

 “너는 커서 어떻게 살고 싶니?

어떤 삶을 만들고 싶니?”

등의 행복할 수 있는 꿈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도 우리들에게

특별한 직업 갖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즉,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당신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삶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과연 주님의

요구를 따르고 있을까요?
오늘 주님께서는 귀먹고

말을 더듬는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간단하게

고쳐주시지 않습니다.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간 뒤에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습니다.

그리고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여기에서 끝난 것도 아닙니다.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라고

 말씀하시지요.

 병의 치유를

간단히 당신 말씀이나

생각으로 하실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하게 이런 긴 과정을

 행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병의 치유라는 결과보다

우리 삶의 과정이

더 중요함을 전해주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삶이 바로 지금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삶입니다.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어떤 삶을 만들어야 할까요?

꿈을 단단히 붙들어라.

꿈을 놓치면 인생은

날개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새와 같다.

(랭스턴 휴즈)

오늘은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입니다.

"내가 먼저 다가서기."

종종 제게 연락을 하고

찾아오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도무지

 연락이 없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서운하게 해드렸나?’

라는 생각도 들다가 점점

 ‘연락이 너무 없으니 섭섭하네.’

라는 생각으로 바뀌더군요.

하지만 이분에 대한 소식을

우연히 듣고는 정말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글쎄 안타깝게 사고로

주님 곁으로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분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사람들이 내게

다가오기만을 생각하고 있을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내가 먼저 다가가도

 될 것을 남이 먼저 내게

다가오는 것을

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과정 안에서

오해를 하게 되고,

이 오해 안에서 아픔과

상처가 움터 나왔습니다.
분명히 서운한 마음이

들게 하는 그 누군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서운하게

했었던 것들을 먼저

바라보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서운하게 한 것은 없는지를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셨습니다.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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