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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02-012-2017,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
작성자민지은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12 조회수962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7년 2월 12일 연중 제6주일 

     

     

    ♣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는 막 떠들어도 되지만 남은 나에게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거나 자존심 상한 말을 하면

    반대로 받아들이 않을 뿐더러 막말을 한 수 떠서 말을 얹습니다.

     

    자기가 남에게 그렇게 떠들 수 있다면 남도 자신에게 떠드는 소리를 잘 받아 들여야 하는데

    그릇된 세상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남은 남에게 함부로 해도 되도 남은 나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논리이지요.

     

    그런데 그 사람이 태어 날 때부터 그렇게 막말을 하였겠어요? 그가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을 잘못했을 때 가족 중에 누가 그 말 태도를 바로 잡아 주었더라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겠지요.

     

     반대로 누가 남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상대에게 존중하는 말을 한다면 그 사람도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렇지 않겠지요.

     

    그도 교육을 통해서 한발 한발 쌓은 덕과 성숙한 인격으로 나가는 수련을 하였겠지요. 

    악인이든 선인이든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지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법 준수 목을 매는 사람들에게 그 법의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7)

     

    그리고 이어서 당신은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들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에서는 끔찍한 ‘살인’을 이야기하지만 주님께서는 작은 가능성 까지도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바로 살인이라는 막다른 곳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감정 조절을 못하는

    데에서부터 그 가능성을 주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에게 성을 내거나 ‘바보’라고 욕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심지어는

    제물을 바치려 할 때에 어떤 사람과 불편한 사이이면 제물을 놓고 가서 그 사람과 화해하고

    돌아와 제물을 바치라고까지 하십니다.

     

    마찬가지로 ‘간음’이라는 지경에 이르지 말고 먼저 이성에 대해서 마음으로 일어나는

    욕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님께서 가르치십니다. 그 가능성까지도 주님께서는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찬가로 툭하면 하느님 이름을 걸고 거짓맹세를 하지 말고 불경의 죄를 짓는 가능성까지도

    다르시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늘이나 땅, 심지어는 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예 어떤 경우에도 맹세를 하지 말하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바탕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떤 말을 있는 그대로 말할 것이지 거기다가 더 보태거나 왜곡시키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할 것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말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이지요.  

     

    집회서 저자는 오늘 복음과 연결 되어서 중요한 삶의 지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계명을 지킬 수 있으니, 충실하게 사는 것은 네 뜻에 달려 있다.

    그분께서 네 앞에 물과 불을 놓으셨으니, 손을 뻗어 원하는 대로 선택하여라.”(집회 15,15-16)

     

    우리가 주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은 사실 우리 자신의 결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작정하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우리의 의지도 중요하겠지만 하느님의 지혜를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입니다. 성령께서는 세상의 통치자들도 깨닫지 못하는 숨겨진 하느님의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올바로 살려고 노력하는 신앙인은 혼자가 아니라 늘 성령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다행이도 하느님의 뜻은 어떤 거대한 일을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매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한 삶이 악으로 기우러졌다면 하루 아침이 아닌 것이지요.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라는

    우리의 속담이 있습니다. 일상의 비록 작지만 비뚤어진 선택이 점점 자라서 결국은

    한 삶이 비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반대되는 속담이 있을까요?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그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매일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정의로움, 친절,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하나하나 모여서

    한 삶을 성실하고 진실한 신앙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에 매여 빈말만 되풀이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의 위선적

    의로움이 아니라 율법의 참다운 정신인 당신의 가르침을 믿고 매일 성실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오늘 미사 전례의 화답송에서 시편저자는 주님의 뜻을 따르기로 선뜻 나선 신앙인들의

    그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행복하여라, 그분의 법을 따르는 이들,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찾는 이들!”

    (시편 119,1-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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