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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2.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14 조회수1,361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7년 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제1독서 창세 6,5-8; 7,1-5.10

5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고,

그들 마음의 모든 생각과 뜻이

언제나 악하기만 한 것을 보시고,

6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7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창조한 사람들을

이 땅 위에서 쓸어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하늘의

 새들까지 쓸어버리겠다.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
7,1 주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가족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거라.

 내가 보니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운 사람은 너밖에 없구나.

2 정결한 짐승은 모두 수놈과

암놈으로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수놈과

암놈으로 한 쌍씩

데려가거라.

 3 하늘의 새들도 수컷과

암컷으로 일곱 쌍씩

데리고 가서,

그 씨가 온 땅 위에

살아남게 하여라.

4 이제 이레가 지나면,

 내가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땅에 비를 내려,

내가 만든 생물을 땅에서

모두 쓸어버리겠다.”
5 노아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10 이레가 지나자

땅에 홍수가 났다.

복음 마르 8,14-21

그때에

14 제자들이 빵을

가져오는 것을 잊어버려,

그들이 가진 빵이 배 안에는

한 개밖에 없었다.

1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주의하여라.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분부하셨다.
16 그러자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빵이 없다고 서

로 수군거렸다.
17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하냐?

18 너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너희는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

빵 조각을 몇 광주리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열둘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주었을 때에는,

 빵 조각을 몇 바구니나

가득 거두었느냐?”
그들이 “일곱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고 박완서 선생님께서

쓰신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나이에는 이것을 해야 하고,

저 나이에는 저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청춘에서 멀어지게 한다.’정말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나이로

해야 할 일을 고정시키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공부해야 할 때라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무조건

일을 해야 할 때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이제 은퇴를 하고나면

 ‘나이가 많아서’라고 하면서

그 어떤 새로운 것을 하려는

 마음을 금방 접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규정을 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까?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까?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그렇게

규정을 내렸을 뿐입니다.
지금의 저를 스스로 보면

요즘처럼 공부를 많이 할 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해야 할 때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학창시절보다도 더 많이

그리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학창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더 놀까를 신경 쓰면서 공부는

 저의 몫이 아니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공부는 공부 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야.”

그러나 중년의 나이에 들어선

지금 책을 늘

가까이 하며 읽고 있으며,

그 내용 중에서 중요한 것들은

 외우려고 노력도 합니다.
얼마 전에 동창들을 만났는데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머리가

굳었나봐.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를 않아.”
앞서 박완서 선생님의 글처럼

스스로의 자기 나이 때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규정을

 했기 때문에 책을 읽기

힘들다고 말하고, 또 공부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러한 부정적인 자기규정은

자기 자신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동창의 이 말에 다들

“나도 그래.”라면서 동의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그마한

크기의 누룩이 밀가루 반죽 속에

 들어가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룩’은 나중에 어마어마한

효과를 내는 작고

감추어진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을 옭아매려는 그들의

작은 행동들이 커다란 결과로

부풀어 오른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위선이라는

 작은 누룩이었습니다.
이 작은 누룩을

우리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자기규정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을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자기규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별 것 아닌 것과 같은

나의 말과 행동이 세상을

환하게도 또 반대로 어둡게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자신은

어떤 세상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습니까?

인간이 아름다운 이유는

슬퍼도 또는 상처받아도

 서로를 위로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장영희)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그날의 영웅"

(‘좋은생각’ 중에서)

미국 군인이었던

릭 레스콜라는

퇴역 후 모건 스탠리의

안전 요원으로 근무했다.

그는 회사가 입주한

세계 무역 센터가 폭발 테러에

노출돼 있음을 알았지만

아무도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1993년, 빌딩 지하에서

폭발 사건이 일어나자

그때부터 릭은 3개월마다

직원들에게 대피 훈련을 시켰다.

두 명씩 짝지어 내려가게 하며

분초까지 철저히 계산했다.

당시 엄격한 훈련이 업무에

방해된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직원이 많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보다 목숨이 중요하기에

위기 상황에 대비한 훈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 무역 센터의 첫 번째

빌딩이 무너졌다.

모그너 스탠리가 자리한

 두 번째 빌딩의 안내 방송에선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했다.

 릭은 잘못된 판단임을 간파하고

 확성기와 무전기를 들었다.

그러곤 직원들에게

즉시 빠져나가라고 지시했다.
사람들은 훈련받은 대로

 속속 내려갔고

는 노래를 불러주며

그들을 진정시켰다.

 도중에 릭은

아내에게 전화 걸었다.

“여보, 울지 마. 난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켜야 해.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괜찮아. 지금이 가장 행복해.”
릭은 2천687명의

직원을 탈출시켰다.

하지만 남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안으로

달려갔고 곧 빌딩은 무너졌다.

투철한 책임감으로 재난에

대처한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나를 살리는 것보다 남을

 살리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나를 살리는 데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행복보다는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선 남을 살리는데

집중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까지 느끼지 못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웅 릭 레스콜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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