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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 눈에도 손을 얹어 주시길 / 연중 제6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15 조회수1,234 추천수2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사물을 보는 데에는 세 단계가 있단다. 첫째는 제대로 못 보는 단계요, 둘째는 보긴 보되 희미하게 보는 것이며, 셋째는 있는 그대로 뚜렷하게 보는 거란다. 우리는 처음부터 영적인 실재를 올바로 볼 수 없다. 먼저 그 실재를 어렴풋하게나마 알아보도록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가서는 명확하게 보일 때가 있을 게다. “우리가 지금은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이처럼 언젠가는 주님께서 진리 자체이신 당신을 알아볼 능력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을 믿고 희망하자.

 

예수님 일행은 벳사이다로 갔다. 사람들이 눈먼 이를 데리고 와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그분께서는 그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나가셔서, 그의 눈에 침을 바르시고 손을 얹고는 무엇이 보이느냐?”하고 물으셨다. 그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다시 눈에 손을 얹으시니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마르 8,22-26 참조)’

 

무엇인가 볼 수 있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이는 앞 못 보는 이의 고통을 실감하지 못할 게다. 하지만 보는 이 곁에 있는 이는 답답함이 오히려 더 클 수도. 그래서였을까?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치유해 줄 것을 청한 쪽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예수님 시대에 장애를 지닌 이들이 당하는 수모와 멸시는 말할 수 없었단다. 신체적인 고통도 크겠지만, 장애가 죄라고 믿는 이들에게 받은 정신적 상처가 더 컸을 것이리라.

 

예수님 일행은 갈릴래아 호숫가 벳사이다에 도착한다. 그곳은 안드레아와 베드로의 집이 있는 곳으로 필립보도 이곳 출신이다. 일행이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눈먼 한 사람을 데리고 와 고쳐 주십사고 청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손을 얹으신다. 그러자 그는 똑똑히 보게 되었다. 눈먼 이가 보게 된 것은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는 것이며, 시력이 회복된 것은 믿음이 약한 제자들도 언젠가는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차츰 뜨이게 될 것이라는 암시일 게다.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히 눈먼 이의 장애를 없애 주는 기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를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치유해 주시고, 다시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라고 명하신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눈먼 이가 받았던 신체적인 상처보다, 치유되고 나서 자신을 멸시하고 천대했던 이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된 뒤에 겪게 될 심리적인 상처를 막아 주고 싶으셨을 게다. 대부분 우리가 겪는 삶의 아픔들은 만남에서 온다. 하느님께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능력을 주셨기에, 스스로 깨달아 노력하면 세상에 극복할 수 없는 일은 없다. 하지만 우리를 실망시켜 낙심에 빠뜨리는 일들은 모두 우리 사회가 병처럼 끌어안고 있는 편견과 오해, 그리고 이기적 집단주의에서 생길 게다.

 

벳사이다의 눈먼 이가 눈을 뜬다. 그가 육신의 눈을 뜨면서 가장 먼저 바라본 이가 예수님이다. 그에게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축복은 단지 육신의 눈이 밝아졌다는 데 있지 않을 게다. 모든 이를 용서하시고 품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얼굴을 본 것이리라. 우리에게도 오늘의 나를 만들어 내신 분께서 계신다. 내 인생에 숱한 이들과 만남 안에 내 인생을 섭리해 주신 예수님 사랑의 얼굴이 있었다. 세상 것에 눈먼 이로 살았기에 그분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 눈이 열린 이는 참 행복하다.

 

첫째 날, 나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나를 가치 있는 삶으로 이끌어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겠다. 손으로만 더듬어 알 수 있었던 선생님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그녀의 모습을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하겠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 나무와 꽃들 그리고 노을을 보고 싶다.’ 헬렌 켈러의 내가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라는 시의 첫 부분이다. 그녀는 한 살 때 심한 열병으로 청각과 시각을 영구히 잃고 캄캄한 절벽 같은 삶을 살았다. 이런 중증 장애인을 앤 설리번 선생님은 정성과 사랑으로 정상인과 다를 바 없는 이로 성장시켰다. 그것을 알기에 헬렌 켈러는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게 된다면, 나무와 꽃들, 저녁노을과 밤하늘의 별들보다 가장 먼저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 낸 그 설리번 선생님을 보고 싶다고 했으리라.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의 눈먼 이를 고치셨다. 오늘날에도 눈이 먼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자식에, 재물에, 명예와 권력 때문에 앞날을 못 보는 이들일 게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유독 눈먼 이의 눈뜨게 하는 이야기가 많다. 절제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결과이리라. 귀한 것일수록 한계를 알아야만 한다. 분수를 잊기에 삶의 리듬마저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시각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 눈에도 손을 얹어 주시길 꼭 청해보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태그 벳사이다,눈먼 이,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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