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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완성에 이르는 6 단계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15 조회수1,656 추천수8 반대(0) 신고


 

완성에 이르는 6 단계

 

- 윤경재 요셉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하고 말씀하셨다.(마르 8,22-26)

 

 

 

 

오늘 복음서 내용을 살펴보면 눈먼 이를 고치시는 데 여섯 단계로 전개되는 치유의 과정이 나타납니다. 마치 대 테레사 성녀가 지은 책 영혼의 성에서 칠 궁방으로 나누어 관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설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초보자 단계로 시작하여 성장하고 성숙 단계를 거쳐 완덕에 이르는 길입니다.

 

여섯 단계는 1,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심. 2,도유 의식과 안수. 3,질문과 불분명한 시력 회복. 4,두 번째 안수와 똑똑히 봄. 5,집으로 파견 6,금지 말씀으로 치유가 완성됩니다.

 

첫 단계인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는 장면은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고요한 장소를 찾아 떠나는 피정과 비슷합니다. 피정에 가서 교육을 받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여 마음을 여는 단계입니다. ‘영혼의 성과 비교하면 첫째 궁방 단계입니다. 아직 세상걱정과 애착에 둘러싸여 악마의 유혹에 빠질 수 있지만, 좋은 지향과 기도를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두 번째 침 바르는 의식과 안수 단계가 둘째 궁방과 비슷합니다. 기도를 정기적으로 바치고 하느님의 뜻에 나의 뜻을 합치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로 질문과 불분명한 시력 회복은 셋째 궁방과 비슷합니다. 이때 각자는 죄를 피하고 덕행을 시작하려 결심하며, 기도 중에 약간의 위안을 경험합니다. 기도는 단순하게 되었고 충분히 시간을 드려 기도에 머뭅니다. 많은 사람들과 수도자들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이 단계에서 멈춘다고 설명합니다. 넷째 궁방으로 들어가는 데는 엄격함과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기보다 겸손과 천진함이 요구된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 안수와 사물을 똑똑히 보게 되는 단계는 대 테레사 성녀가 고요의 기도상태라고 부르는 넷째 궁방입니다. 여기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주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느끼는 것으로, 주입관상 체험을 비로소 하고 수동적 정화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분심과 건조함이 주는 어둠 속에서 신앙의 정화가 이루어지는 단계입니다.

 

집으로 파견하는 단계는 다섯째 궁방으로 성녀 테레사는 합일의 기도라고 부릅니다. 때때로 평화와 기쁨 속에서 주님께 집중할 수 있습니다. 전환기로서 아주 짧게 지나긴다고 설명합니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하고 금지하신 단계는 여섯째 궁방으로 내외적으로 다가오는 시련기입니다. 기도 속에서 매우 건조함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 시기는 아주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다가오는 시련을 예상하시고 미리 그를 만류하셨습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난 칠 궁방은 영적 혼인 상태로 주님께서 머무시는 방에서 친밀한 일치를 이루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여전히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지만, 크게 방해하지는 못하는 단계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는 장면과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하고 금지하신 말씀이 처음과 끝을 장식함으로써 마을을 벗어나는 내용이 강조됩니다.

 

그 마을은 예수님을 배척했던 곳이며 진리보다 어둠을, 또 사리사욕을 더 원했던 곳입니다. 이제 치유된 그가 떠나야 마땅한 곳이었습니다. 그 마을에서는 눈먼 이로 살아서 여태껏 볼 필요가 없는 것은 보지 않았으나, 이제는 모든 것을 보고 배울 터인데 자칫하다가는 유혹에 빠져 버릴까 염려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이 사는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투는 마을이 아니라 사랑과 우정이 넘치는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이때 사용된 동사는 사도들을 파견하실 때 쓰셨던 그리스어 apostello 입니다. 그를 사도처럼 여기고 파견하셨다는 뜻입니다. 그저 사랑하는 가족이 사는 집으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받은 은총과 사랑을 그곳에 가서 행동으로 옮겨 전파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사도(apostolos)라는 말은 자신들이 가르침 받은 것을 감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기고 전달하는 목적으로 파견된 자라는 뜻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열두 사도만 사도가 아닙니다. 흐릿하게 보던 것을 분명하게 깨닫고 그 사랑과 은총을 나누는 자가 진정한 사도입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눈먼 상태에서 벗어나 완덕에 이르는 길로 나아가려면 과연 내가 어느 단계에 와있는지 깨달아 차근차근하게 그리고 멈추지 말고 성장하여야 합니다. 단계에 맞는 가르침에 충실할 때 시행착오 없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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