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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2.1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15 조회수1,480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년 2월 15일

연중 제6주간 수요일

제1독서 창세 8,6-13.20-22

6 사십 일이 지난 뒤에,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밖으로 나가

땅에 물이 마를 때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8 그는 또 물이 땅에서

 빠졌는지 보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다.

9 그러나 비둘기는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노아에게 돌아왔다.

온 땅에 아직도

물이 있었던 것이다.

노아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아

 방주 안으로 들여놓았다.

10 그는 이레를 더 기다리다가

다시 그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보냈다.

11 저녁때가 되어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있었다.

그래서 노아는 땅에서 물이

빠진 것을 알게 되었다.

12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려

그 비둘기를 내보냈다.

그러자 비둘기는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3 노아가 육백한 살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의 물이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내다보니 과연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
20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들 가운데에서

번제물을 골라

그 제단 위에서 바쳤다.

 21 주님께서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

 22 땅이 있는 한,

씨뿌리기와 거두기,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그치지 않으리라.’

복음 마르 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22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의

가장 큰 갈등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이 힘들다는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죄를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일상의 삶 안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유혹들에 쉽게 넘어가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러한

상태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성당 나가는 것이

꺼려진다고 말씀하시고,

또 실제로 그런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또한 이러한 갈등도 있지요.

“어떻게 성당 다니는

사람이 저럴 수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저렇게 죄를 지으면서도

 뻔뻔하게 성당 나가는 모습이

보기 싫다면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포기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자신이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갈등 그리고

성당 안에서 계속 죄인을

봐야한다는 것은 분명히

큰 갈등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벳사이다라는 지명은

 ‘어부의 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곳으로

안드레아와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의 고향입니다.

이 사도들의 고향에 주님을

볼 수 없는 눈먼 이가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주님을 알아 뵙고 따르는

사도들의 고향이지만,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분명히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교회 안이지만,

이 안에 꼭 선과 의로움이 가득할까요?

분명히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하면서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눈먼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장면은

또 한 가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손을 얹으셨지만 단번에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인다고 말을 하지요.

그러자 다시 손을 얹으셨고,

이로 인해 그는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됩니다.

주님으로부터 받는 치유는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점차 주님으로부터

치유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사의 은총으로 단번에

주님을 알아보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까요? 아닙니다.

계속해서 주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조금씩 변화되는 것입니다.

미사를 보아도 별로 변화가

 없는 것 같다고, 고해성사를 봐도

 똑같은 죄를 또 짓는다고

포기할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변화되면서 점점 주님을

알아보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서두르지 말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나와

내 이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힘을 나의 일생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나와

남의 다친 영혼을

 달래는 것뿐이다.

(김인환)

갑곶성지 지하성당에서의 미사.

"새의 배설물 구아노"

인터넷에서 우연히 구아노라는

비료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페루 여행을 갔을 때

들린 ‘발레스티섬’에서 본

 ‘구아노’가 생각나더군요.

 이 섬은 새들이 배설을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섬 전체가 ‘똥’으로 가득하지요.

이상한 냄새가 나는 이 섬,

그런데 이 ‘똥’ 때문에 1879년에

칠레와 페루, 볼리비아가

태평양 전쟁을 벌였다고 합니다.
우선 ‘구아노’는 새들의 배설물이

 쌓인 퇴적층이자

세계 최고의 유기농 비료입니다.

이 섬에 수천 만 마리의 새들이

몰려와서 배설을 하는데,

이 배설물은 아무런 첨가물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천연유기농 비료가 된다고 합니다.

 이 최고의 비료인 ‘구아노’를 놓고서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배설물 때문에 전쟁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됩니다.
그 누가 ‘똥’이 중요하다고 할까요?

하지만 이 ‘똥’ 때문에 전쟁까지

 날 수 있다는 사실... 이 세상에서

 어떤 것도 쓸모없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전쟁까지도 불사하는 귀한

존재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페루의 팔레스티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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