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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혼인은 창조질서의 본보기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2-24 조회수1,161 추천수12 반대(0) 신고

 

혼인은 창조질서의 본보기

 

- 윤경재 요셉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10,4~9)

 

 

 

복음서 곳곳에 스스로 죄 없고 경건하다고 여기는 바리사이들의 행동을 지적하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바리사이들은 실제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또 자선이나 단식, 기도 행위도 율법에서 요구하지 않는 범위까지 넘치게 실천하였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내용은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지켰으니 다른 사람들도 지킬 수 있으며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였습니다.

 

이런 바리사이 정신의 단점은 다른데서 나타납니다. 율법 조문에 매달리다 보니 율법에 미처 기록되지 않은 일들은 양심과 도덕에 어긋나도 아무런 죄의식이 들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소박 율법이 그렇습니다. 모세가 지은 율법에 따라 이혼장만 써주면 소박하는 데에 제한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남편이 생각하기에 부인이 조금이라도 소홀하게 대접하거나 가정생활에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면 이혼장을 써주고 소박하였습니다. 심지어 유대역사가 요세푸스는 자기 부인보다 예쁜 여인을 만나고서 본처가 못생겼다는 이유를 들어 소박하기도 하였습니다. 요즘 개념으로 보아도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벌였습니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맞아들여 혼인하였는데, 그 여자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을 경우, 이혼 증서를 써서 손에 쥐어 주고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신명24,1)

 

신명기 24,1절 해석을 두고 율법학자들 사이에서 샴마이학파와 힐렐학파는 서로 논쟁을 벌였습니다. 샴마이학파는 이 규정을 제한적으로 해석했으나, 힐렐학파는 부인이 1,간음했거나 2,무엇인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남편은 일방적으로 이혼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다만 혼인계약서에 작성된 이혼금을 지불해야 했기에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이혼장을 함부로 쓸 수 없었을 뿐이었습니다. 돈만 있다면 남자는 별의별 핑계를 붙여서라도 이혼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다처제도 허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율법에 따라 죄를 판정하면 언제나 경우의 법에 빠지게 마련입니다. 이럴 경우는 죄이고, 저럴 경우는 죄가 아니라고 인간 스스로 심판하고 단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스스로 신성 영역을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금기(타부)를 정해 놓고 사람들을 옭아맨다는 말입니다. 모두 인간이 죄를 판단한 탓입니다.

 

유다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무척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친척과 자녀가 없는 과부나 이혼녀는 그야말로 노예와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여성이 자녀를 못 낳는 것은 하느님의 형벌로 간주되었습니다.

 

심지어 여성은 율법을 지킬 의무도 없었습니다. 월경에서 벗어난 정결의 날 전, 출산 후 40일 또는 80일 동안은 성전에서 이방인의 뜰에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재판에서 증언할 권리도 없었습니다. 인격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는 취급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예수께서는 여성에게 제자가 되는 것까지 허용하셨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관습을 탈바꿈 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복음서 곳곳에서 여성을 존중받아 마땅한 한 인격체로 대접하신 사례가 나옵니다. 여인을 남자와 동등한 지위로 올려놓으셨습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5,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마태21,31~32)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루카7,37~38)

그들이 길을 가다가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루카10,38~39)

 

또한 오늘 복음말씀처럼 남녀 간의 결혼을 신성하게 여기시고 일부일처제를 찬성하셨습니다. 이혼을 금지하며 토라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으셨습니다. 결혼을 하느님의 창조질서의 본보기로 삼으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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