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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3 금/ 언제 왜 단식할 것인가?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02 조회수1,359 추천수3 반대(0) 신고




재의 수요일 다음 금, 마태 9,14-15(17.3.3)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이사 58,6)





The question about fasting






언제 왜 단식할 것인가?

 

주님의 수난의 사랑을 묵상하며 하느님을 갈망하는 사순절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단식입니다. 그렇다면 단식은 왜, 그리고 언제 할 것인지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겠지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9,14-15) 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이들에게는 단식이 아니라 기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단식하며 기다리던 바로 그분이시고, 그분과 함께하는 시기가 인류의 혼인잔치 시기이며 제자들은 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 하느님 부재의 현실, 하느님께서 슬퍼하실 비인간적인 삶이 펼쳐지는 바로 그때 바로 단식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발견할 수 없는 불의하고 불평등하며, 소외와 억압이 기승을 부릴 때 하느님께 되돌아가고 신랑이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단식해야겠지요.

그렇다면 왜 단식을 해야 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건강과 젊음을 위해서, 또는 방심하지 않거나 용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등 육신적, 정신적, 종교적, 예술적인 다양한 동기로 단식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단식은 하느님과의 전인격적인 일치를 갈망하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기억하며 재림하실 그분을 기다리는 단식입니다.

단식은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음을 깨닫기 위한 여백을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단식을 통해 몸과 마음과 영혼을 절제함으로써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단식을 하는 목적은 육의 정신과 성향을 끊어버리고 하느님을 마음과 혼 안에 모시기 위한 것이지요. 단식이란 새로운 탄생이며 새로운 일치이며 회심입니다.

그러나 단식을 개인적 신심행위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실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단식은 나눔의 몸짓으로서 함께 하기 위한 생명의 용트림이요 사랑의 몸짓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가르침처럼 주님께서 좋아하실 단식, 곧 이웃에 대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단식을 하도록 힘써야겠습니다(58,1-6).

우리는 단식을 통해 이웃을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버리고 내어줌으로써, 이웃과의 만남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단식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불행하고 고통 받는 이들의 처지에 참여하고 나누며,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는 단식을 하기로 결심해야겠습니다(이사 58,6-7).

우리 모두 존엄한 인간과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사랑과 진리와 선과 정의가 극도로 침해받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지금 여기서 가슴을 치며 단식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불의하고 불평등하며, 돈과 권력의 우상이 존엄한 인간 가치를 위협하는 이때, 말과 생각과 행동의 단식을 통해 주님께서 기뻐하실 축제를 '지금, 여기서' 거행하는 우리이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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