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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정인준 신부
작성자민지은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03 조회수980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7년 3월 3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 “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우리 속담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다 놓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셨던 하느님이냐재물이냐?’라는 질문과 함께 동시에 다 섬길 수는 없다.’라는

말씀을 이 속담과 연계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인의 갈등은 세상에 살면서 부터입니다세상 안에서 사는데 어떻게 그 영향을

안 받을 수 있겠어요?

 

때로 신앙인이 강요에 의해서 신앙을 버리게 하는 외부의 힘박해 때문에 위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수 많은 경우를 지켜 불 수 있습니다그런데 대부분의 신앙인은 외부의

힘에 의한 고통과 어려움보다는 내부의 갈등이 주는 문제에 부딪칠 때가 많습니다.

 

그 갈등의 주제는 세상이냐 하느님이냐?’이지요.

 

이름 뿐인 신앙인은 적당히 세상도 섬기고 하느님도 섬기는 절충식의 답을 안고 살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말은 성립될 수 있지만 정작 실제의 삶에서는 갈등으로 남고 결국 불가능하다는 사

실을 깨닫게 되지요.

 

지난 2월 23일에 교황님께서 비공개 미사 강론 중에서 위선적인 신앙인으로 살기 보다는

차라리 무신론으로 사는 것이 더 낫다.’라는 파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이중생활의 신앙인은 안 된다고 못 박으신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과 재물’ 사이에서 갈등을 갖고 때로

혼란에 빠지는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시며 기다려 주신다고 우리는 희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않고 갈등을 갖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이사야 예언자는 말뿐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직구의 질문을 던지며

정의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보라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보라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이사 58,3-4)

 

예언자는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진정한 단식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6-7)

 

예언자는 이름뿐인 또 형식뿐인 신앙의 삶이 아닌 말 없이 의를 실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대답해 주시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 하고

말씀해 주시리라.”(9)

 

 

바리사이와 세례자 요한의 당시의 관례에 따라 단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볼 때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을 하지 않는 모습이어서

비판의 마음으로 스승이신 주님께 질문합니다.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마태 9,1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믿도 끝도 없으신 대답을 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15)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심지어는 제자들까지도신랑이 하께 있는 동안이라는

말과 신랑을 빼앗길 날에 대해서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며칠 동안 지속되는 유대의 혼인관습에서 신랑의 둘러리 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는

혼인의 분위기 때문에 비록 단식기간이라도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실 때에야 관례적인 단식의 슬픔을

표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제자들이 미래에 신랑이신 예수님을 잃고 슬퍼할 날을

예고하시는 것입니다.

 

후에서야 제자들은 그 말씀이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의미하셨음을 깨닫게 되지요.

 

여기서 주님께서 관례적으로 지키는 유대인들의 단식에 대한 비판은 없으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곳의 사람들이 비록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단식

진정한 의미를 당신 죽음과 연결시켜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단식은 고착된 자신의 그릇된 잘못죄에 대한 뉘우침의 표시인 것입니다유대인들의

미움과 그릇된 신앙관으로 빚어진 무죄한 이를 죽음으로 몰아 넣는 잘못을 저지르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배타적인 유대인들은 관례적인 단식을 겉으로는 지켰을지 몰라도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당신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시며 보여주신 단식의 의미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출처: 장성성당 원글보기 ▶ 글쓴이:저구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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