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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깨진 유리창 효과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04 조회수1,494 추천수10 반대(0) 신고

 

깨진 유리창 효과

 

- 윤경재 요셉

 

 

예수님께서는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카5,27~32)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해 두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습니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사회 전체에 큰 문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이 이론은 무관심이 가져오는 폐해가 얼마나 큰지 나타냅니다.

 

실례로 1980년대 뉴욕 지하철에서는 연간 60만 건 이상의 중범죄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88년부터 지하철의 중범죄가 75%나 줄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환경을 산뜻하게 개선하고 낙서, 무임승차와 같은 작고 사소한 범죄들을 단속했기 때문이랍니다. 마찬가지로 멀쩡한 자동차와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를 함께 도로변에 세워두었을 때 유리창이 깨진 자동차가 더 많은 손상과 파손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사람과 사건을 바라보시는 관점은 바리사이나 우리와 매우 달랐습니다. 바리사이와 우리는 사물과 인물의 겉모습만 훑는데 반해 예수께서는 사물과 인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보시고 그의 인간됨과 고민을 한꺼번에 살펴보셨습니다. 그의 가능성을 열어보셨습니다. 잠자는 그의 영을 흔들어 깨우셨습니다.

 

우리와 예수님 사이에는 늘 아득한 낭떠러지가 놓여있습니다. 예수님 말씀과 행동은 물음표 투성이입니다. 매일같이 성경을 펼쳐 읽어도 온통 수수께끼뿐입니다. 아득한 절벽이 생깁니다. 낭떠러지 이쪽에 선 우리는 건너 쪽을 향해 예수의 이름만 부를 뿐입니다. 주님! 주님! 그렇게 목 놓아 외칠 뿐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사람의 겉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가 어디 출신이고, 직업은 무엇이고, 신분은 어떠하며, 어떤 신앙을 가졌는지 그걸 따졌습니다. 그래서 자신들과 모든 면에서 다른 세리와는 식탁에 함께 앉지도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달랐습니다. 그런 외면의 모습 모두를 무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에게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바리사이든, 세리든, 사마리아 사람이든, 여인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 속에 잠들어 있는 영을 일깨우고자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불어넣었던 하느님의 모상’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세리 레위를 마치 깨어진 창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병든 이와 죄인 하나를 용서하고 어루만지면 더는 범죄가 번져나가지 않을 줄 아셨습니다. 죄인을 방치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더 큰 잘못이라고 우리에게 외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대를 받은 레위는 깨어진 마음을 추스를 힘을 얻었습니다. 자기 내면에서 용솟음 치는 어떤 빛을 느꼈습니다. 너무나도 강렬한 인상 덕분에 한순간 모든 움직임은 정지되고 온 우주에 오로지 예수님과 자신 단 둘만이 서 있다는 체험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확 달라졌다고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더라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소년 교육을 담당하는 살레시오 수도회의 정신은 교육이 아니라 영성을 일깨우는데 있다고 강조합니다. 가르침이 말이 아니라 마음이여야 하고, 지식의 전달이 아닌 을 체험하게 하여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게 하자는 것입니다. 인간을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 영성에 있다는 것을 돈 보스코 성인께서 예수님을 통해 배우셨기에 이런 정신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살레시오 정신은 나를 움직이는 위대한 힘이 내게도 다가왔다는 체험의 기회를 열어주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최소한의 자존심과 인격을 지켜줄 경제적 도움과 인격적 지지를 베풀어야 합니다.

 

살레시오 수도회 김용은 수녀는 수도회의 이런 정신을 ‘3S’를 들어 설명합니다. 나를 깨우는 생각의 영성인 STUDY. 행복을 부르는 마음의 영성인 SMILE. 평범을 비범하게 하는 행동의 영성인 SERVICE. 이 세 가지 영성을 통해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영적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가르침은 세리인 레위를 부르시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셨던 예수님의 언행을 본받았기에 가능했습니다.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정신을 깨우친 성인들의 생활이 모두 여기서 출발하였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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