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3.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04 조회수2,720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7년 3월 4일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제1독서 이사 58,9ㄷ-14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9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10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11 주님께서 늘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부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12 너는 오래된

 폐허를 재건하고,

대대로 버려졌던

기초를 세워 일으키리라.

너는 갈라진 성벽을

고쳐 쌓는 이,

사람이 살도록 거리를

 복구하는 이라

일컬어지리라.
13 ‘네가 삼가 안식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네가 안식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안식일을 존중한다면,

14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네 조상 야곱의 상속

재산으로 먹게 해 주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복음 루카 5,27ㄴ-3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27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28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29 레위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세리들과 다른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다.

 30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그들의 율법 학자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렸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32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어떤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절대로 이탈리아에는

가지 않겠다.’

말을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친구가 작년 여름에 이탈리아

여행을 가서 소매치기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이틀에 걸쳐서 연속해서

 소매치기를 당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소매치기가 많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곳은 여행가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이탈리아에

몇 차례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단 한 번도

 소매치기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렇게나 하고 다녀도

저의 것을 훔쳐 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운이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매치기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다면

어떻게 여행을 온전히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세상은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에

어떤 곳을 가더라도

좋은 만남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남의 말만 듣고서 섣부르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면 안 됩니다.

 이러한 선입견이 내게 다가올

새로움을 체험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닫힌 마음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지금의 상황을

 마주한다면 어떨까요?

분명히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으로 인해 삶이 주는

소중한 가르침을

얻을 수가 있게 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당시의 죄인으로 분류되던

세리들과 식사를 함께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 가르침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죄인과 함

께 있으니 예수님 역시

인이라고 쉽게 결론을

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알지

못했던 것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인을

단죄하는 심판관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는

 의사로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사실만을 보고서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을 뛰어넘어 큰 죄를

 범한 것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다양성은 인정하지 않으면서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라는

생각이 바로 예수님을 다시금

십자가에 못 박게 하는

행동의 반복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은,

주님께서 ‘죄인들을 치료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바로 ‘용서’였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용서의 삶을

따르면서 주님과 함께 하고

있었는지를 이 사순시기에

 묵상했으면 합니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나 또한 나설 필요는 없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중에서)

베드로 대성전입니다.

"첫째로 명심해야 할 것."

(파울로 코엘료, ‘마크툽’ 중에서)

한 남자가

스케타 수도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은자를 방문하기로 했다.

 사막을 끝도 없이 걸은 뒤,

마침내 남자는 은자를 만났다.

남자가 은자에게 물었다.
“영적 길을 갈 때

첫째로 명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은자는 남자를 우물가로

데려가 우물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라고 했다.

남자는 그렇게 했다.

그러자 은자가 우물물 속에

조약돌을 연거푸 던져넣었다.
“그렇게 조약돌을 던지시니

제 얼굴을 볼 수가 없네요.”
은자가 대답했다.
“수면이 흐트러진 물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길을 갈 때 마음이

불안하면 신을 만나지 못합니다.

 바로 이것이 당신이

첫째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어제에 이어서 파울로 코엘료의

책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을

골라 보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는 어떤 곳도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새로움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불안하고 온갖 걱정으로 내 마음을

채운다면 주님 역시 만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파울로 코엘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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