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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3.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05 조회수1,496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7년 3월 5일

사순 제1주일

제1독서 창세 2,7-9; 3,1-7

7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3,1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제2독서 로마 5,12-19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15 그렇지만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16 그리고 이 선물의 경우도

 그 한 사람이 죄를

지은 경우와는 다릅니다.
한 번의 범죄 뒤에 이루어진

심판은 유죄 판결을 가져왔지만,

많은 범죄 뒤에 이루어진 은사는

무죄 선언을 가져왔습니다.>

17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복음 마태 4,1-11

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6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7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8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9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11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캠프에 가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불 주위에
모여서 노래도 부르고
밤새 이야기를 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계신 분들이 많지요.
그런데 이 모닥불을
피운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주워 온 나뭇가지들은 잘 타지도
않고 또 왜 이렇게 연기가 많이
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모닥불을 반드시
 피워야 한다는 일념 하에
숨이 막히고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는 연기를 들이마시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합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불이
 타오르게 되면 어떻습니까?
이제 연기는 사라지고 불꽃이
 온기와 평화로움을 가져다주면서
 좋은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모닥불을 피우는 모습이
어쩌면 우리들의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이 새벽에 하게 됩니다.
모닥불을 피우기까지 연기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불을 피우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 역시 많은 아픔이
찾아오고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 끝에 분명히
 평화로움과 기쁨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힘들고 어렵다면서
포기해버리면 어떨까요?
모닥불 피우는 것이 힘들다며
포기를 하면 캠프의 마지막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처럼,
 내 삶 역시 엉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늘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삶인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유혹들로 인해서
우리들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힘들어 합니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주님께서 원하실까요?
아닙니다. 유혹을 거뜬히
극복해서 자신의 삶을 마음껏
즐기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직접 받으시면서 어떻게
이겨야 할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악마는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을 때 유혹하지 않습니다.
사십일 동안 단식을 하셔서
가장 시장함을 느끼고 계셨던
예수님께 유혹하지요.
우리에게 역시 악마의 유혹은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힘이 있을 때
시작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부족하고
 느끼고 있을 때,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나약함이 보일 때
 악마는 유혹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이 악마의 유혹을
어떻게 이기셨을까요?
악마의 세 가지 유혹은 탐식,
허영, 탐욕이었습니다.
 돌을 빵으로 만들어서 배불리
먹으라는 탐식의 유혹,
하느님의 아들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높은 곳에 뛰어내리라는
 허영의 유혹, 세상의 모든 것을
얻기 원한다면
자신을 경배하라는
탐욕의 유혹이지요.
이 모든 유혹을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이겨내셨습니다.
 즉, 우리 역시 모든 유혹에
성경으로 맞서라는 것이지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악마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유혹들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었을까요?
혹시 어쩔 수 없다면서 악마의
유혹에 그냥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서 계속해서 탐식,
허영, 탐욕 등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모닥불을 피우기 전까지
어렵고 힘들지만,
피우고 나서는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유혹들을 이겨냈을 때
참 기쁨과 행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움은
 선택에 있다.
(G.무어)
모닥불을 피울 때의 힘듦이 지나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사람마다 좋아하는

책의 장르가 있을 것입니다.

소설, 에세이, 인문과학 서적

등등 참으로 다양한 책의

장르와 함께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장르를 찾아 읽습니다.

저는 소설이나 에세이

서적을 즐겨 읽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다른 책을

읽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즉, 저의 필요에 의해서

인문과학 서적이나 자기계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처럼

기분 좋게 책을 읽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똑같은

부분을 몇 차례 읽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한 장을 읽는데 몇 십 분을

소비하게 되기도 하지요.
이렇게 잘 이해되지 않는 글을

 꾸역꾸역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 내려가다 보면,

 내 눈길을 끄는 구절을

분명히 찾게 됩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

 마지막 마침표에서 눈을 떼고

난 뒤에는 커다란 성취감까지

얻게 됩니다. 나의 관심과

먼 책이라 할지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살 수 있겠습니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하고 딱 맞는 사람,

나만을 위해주는 사람과만

함께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싫은 사람도 있고,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지 않는

책이라도 끝까지 읽다보면

분명히 내가 원하는 구절을

그리고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생각되는 그 사람을

통해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쓸모없는 책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람이라는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분명히 그를 이해하고

그와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정리 안 되어 있는 제 방의 책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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