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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306 -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 이기양 요셉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06 조회수1,347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
03 06 () 가해 사순 제1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레위기 19,1-2.11-18
마태오복음 25,31-46


이기양 요셉 신부님


<
그가 바로 나였다! >


가끔씩 신자들에게서 듣는 말이 있습니다.
“신부님 저 집은 참으로 축복 받은 집입니다. 첫째 아들은 의사이고 둘째는 미국 유학 중이며, 셋째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지금 연수원에 있습니다. 세상 남부러울 것이 없는 집입니다. 어떻게 하느님께서는 이 집에만 몽땅 축복을 내려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랑처럼 그 집안을 온통 꿰고 앉아서 이야기합니다. 듣기만 해도 대단하지요. 정말 하느님의 은총을 많이 받은 집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과 하느님이 보시는 것은 같지가 않습니다. 세상의 믿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그런 가정을 보고 하느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을 하지만 오늘 복음 말씀을 들으면 이런 현세적인 축복이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심판의 날에 하느님께서 천국으로 보내는 사람의 판단 기준에는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는가, 직위가 얼마나 높은가, 자식 중에 의사나 교수가 있는가 하는 대목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로지 하느님께서 심판대 앞에서 판단하시는 것은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에게 얼마나 진실된 사랑으로 선행을 행하였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최후의 심판에 관한 예언을 하시며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마태25,40.45-46)

그렇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심판의 기준은 세상을 살면서 받고 누렸던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며 큰 관심을 갖는 재물의 축적이나 자식 농사, 높은 직위, 외모, 건강 등은 하느님 나라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오로지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베풀었느냐 하는 것만이 하느님의 대전에서 진가를 발휘한다는 사실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자기가 했는지도 모른 채 “제가 언제 그런 일을 했습니까?” 하고 반문하는 의인들이나 선행을 베풀지 않았다는 것조차 모르는 악인들에 대해서도 심판관이신 하느님은 낱낱이 다 알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랄만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가족, 또 이웃에 해만 안 끼치고 살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을 배려했는가?”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삶을 보아도 똑같습니다. 3년 간의 공생활을 하시는 동안 예수님의 최대의 관심사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너무나 잘 알게 됩니다. 그래서 역시 우리가 하느님 앞에 의인으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은 예수님께서 몸소 사셨고, 또 오늘 말씀으로 가르치신 것처럼 고통 받고 힘겨워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나눔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을 들으며 스스로에게 반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는가? 만약 지금 하느님 앞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면 의인으로 인정받을 것인가, 아니면 악인으로 내어 쫓겨나 불붙는 곳으로 던져질 것인가?
우리 대부분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사순 첫 주를 시작하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아주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가난하고 헐벗고 고통받는 사람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심성은 그와는 반대되는 길로 나아가고 싶어하지요.

못 사는 사람보다는 잘 사는 사람, 못 배운 사람보다는 많이 배운 사람에게, 또 외롭고 힘든 사람보다는 넉넉하고 풍요로운 사람과 만나기를 바라고 또 그들과 친하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이런 성향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은 가난한 사람들, 고통 받고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향한 열린 마음과 배려에 있다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의 날, 우리를 변호해주고 의인으로 판정 받는 기준이 바로 그 보잘것없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정의의 실천임을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본주의 사회는 전형적으로 약육강식의 사회입니다. 잘 되는 사람은 더 잘 되고 못 되는 사람은 끊임없이 뒤쳐지고 내동댕이쳐질 뿐입니다. 우리 신자들마저 이 자본주의의 논리를 따라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은 세상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가정에서, 이웃에서, 직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큰 위로가 되고 작은 나눔이 풍요로운 삶의 계기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면 오늘 복음 말씀을 기억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하루가 되도록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이어져서 주님 마음에 드는 의인으로 판결 받을 수 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바로 그 곳에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계신 주님을 만나 뵐 수 있을 것입니다.


이기양 요셉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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