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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6."가장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것이 나에게 ~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06 조회수1,525 추천수1 반대(0) 신고

마태 25,31-46(사순 1주 월)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자주 듣는 말씀입니다. 곧 위령미사 때 듣는 말씀이요, 또한 “그리스도 왕 대축일” 때도 듣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 재림의 때에 행해질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왕으로서 권한을 행사하시는 장면 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께서는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전권을 가진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뒷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8)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떨치며 모든 천사들을 거느리고 와서,

 

영광스러운 왕좌에 앉을 것이다”(마태 25,31)

 

 

 

그날이 오면, 바로 당신께서 다시 오실 것이요, 손수 심판의 주체가 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날이 오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을 앞에 불러 놓고, ~양은 오른 편에 염소는 왼 편에 자리 잡게 할 것”(마태 15,32-33)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당신 심판의 대상에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피부 색깔, 종교의 구별 등이 없이 누구나 예외가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날이 오면, ‘오른 편에 사람들은 축복을 받아 창조 때부터 준비한 나라를 차지하게 되고, 왼 편의 사람들은 저주를 받아 영원한 불 속에 떨어지게 되는 심판의 처벌’(마태 25,34-46 참조)이 내려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에서 중요한 것은‘심판의 기준’ 입니다. 그 기준은 신앙이나 종파가 아닙니다. 초월적인 신비체험이나 관상이 아닙니다. 기적이나 예배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사랑과 자비의 실천일 뿐입니다. 특별히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마태 25,40)에게 해준 사랑과 자비의 실천입니다. 왜냐하면,그들에게 해 준 것이 곧 예수님께 해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왕이시요, 우리 모두의 왕이시지만, 그분의 통치방식은 사랑이요 자비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 15,12)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시는 왕으로서 재림의 심판 때에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입당송>에서도, <예물기도>에서도, 자비를 간구합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이를 분명히 말해줍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당신의 ‘형제’라고 부르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해준 것이 당신에게 해준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느님을 인간들 사이에서 만나게 되고,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마더 데레사는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외면하는 버려진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았다’

 

 

 

그렇습니다. 진정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형제에게 속해있고,동시에 하느님께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요한 4,20)

 

 

 

한편, 이 심판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처벌을 받은 왼 편의 사람들이 어떤 큰 범죄나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단지 무관심하고 소극적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처벌을 받은 것은 그들이 특별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사랑을 하지 않는데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니, 사랑하지 않음이 그리고 자비를 베풀지 않음이 곧 큰 죄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실천을 동반한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 주변의 약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적 적극성을 통해서 확인됩니다.

 

그런데, 이 심판에서 묘한 것은 사랑과 자비를 베풀지 않는 이든 베푼 이든, 그들은 자신들이 행한 사실조차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예수님께 한 것인지조차 더욱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둘은 정반대의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사랑을 베풀지 않은 이가 자신이 행한 것조차 모름은 마치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에서처럼, 그들이 자신에게 빠져 타인에게 무관심하여 회개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반면에 사랑을 베푼 이가 자신이 행한 것조차 모름은 이기적인 자신을 떠나 온전히 이타적인 사랑을 베푼 까닭에, 자신의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른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해서, 전자는 자신에게 빠진 경우요, 후자는 자신에게서 빠져나온 결과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곧 전자는 자신에게 푹 빠져 어둠에 갇혀 눈이 멀어져 버린 경우요,후자는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자신이 사라지고 빛이 되어버린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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