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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3.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06 조회수1,589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7년 3월 6일

사순 제1주간 월요일

제1독서 레위 19,1-2.11-18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11 너희는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속여서는 안 된다.

동족끼리 사

기해서는 안 된다.

12 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는 이웃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품팔이꾼의

품삯을 다음 날

아침까지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14 너희는 귀먹은 이에게

 악담해서는 안 된다.

눈먼 이 앞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15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16 너희는 중상하러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너희 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서는 안 된다.

나는 주님이다.
17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18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복음 마태 25,31-4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보았던

문제 하나를

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의 다섯 가지 스포츠 중

나머지 넷과 공통점이 가장 적은

스포츠는 무엇일까요?
1) 야구 2) 크리켓 3) 축구

4) 골프 5) 아이스하키
이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프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단체 경기이지만,

골프는 개인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골프만이 낮은 점수를

가져야 이기는 경기이며,

다른 스포츠에 비해

느린 운동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스하키도 다른 경기와

 구별되는 것이 많습니다.

유일한 동계 스포츠이고,

운동화가 아닌 스케이트를 신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축구도 생각하면

다른 경기와 다릅니다.

 축구만이 막대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잘 생각하면 모든 스포츠가

 나름 차별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위 문제에 대한

정답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다 맞는 답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은 이렇게

 어떤 것을 선택해도 다 맞는

답을 가져오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점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와 다른 답은 무조건 틀렸다고

주장하는 듯합니다.

다양한 답이 주어지는

이 세상 안에서 나와 다른 답을

선택했다고 해서 반대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실 예수님을 향한 사람들의

적개심은 바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틀린 것이고,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나쁜 영향을 끼친 적은

하나도 없습니다.

무엇을 훔친 것도 아니었고,

사기를 쳐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배고픈 이들을 배불리

먹어주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어도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최후 심판 때의 모습을

 살짝 보여주십니다.

바로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내게 해 준 것이라고 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반대로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내게 해 주지 않은 것이라고

 하면서 이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간다고 하십니다.

내가 만나는

가장 작은이가 누구일까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든

또 반대로 다른 생각을 하든

상관없이,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

다양한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혹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향해서

틀렸다면서 단죄하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을 배울 수 있다.
(아이리스 머독)
어제는 인천교구의
소사본3동성당에서 사순특강을 했습니다.
"상대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만들지 마라."
미국의 국민배우라고
 불리는 모건 프리먼이 한 기자와
인터뷰를 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당신을 ‘검둥이’라고
부르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나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인데
문제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그건 저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검둥이’라는 잘못된 단어를 사용한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거니까요.”
모건 프리먼의 지혜로움을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히 검둥이라고
말한 사람이 문제일까요?
아니면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문제일까요?
당연히 ‘검둥이’라고 말한
 사람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상대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혼동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상처받을 일이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부분에 있어서
 가장 큰 영역이 타인의
감정에 대한 반응이 아닐까요? 
소사본3동성당 내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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