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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니네베 사람들의 마음가짐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08 조회수1,417 추천수14 반대(0) 신고

 

니네베 사람들의 마음가짐


- 윤경재 요셉 


 

 

예수께서 이 세대를 향해 악한 세대라고 규정하신 이유는 예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목격하고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중상모략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예수께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터무니없이 말하고 행동한 까닭은 선입견에 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의 말만 듣고 오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있는 그대로 살폈으면 이렇게 악령과 비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평소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표징을 요구할 때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더 확실한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11,20)

 

하느님의 손가락이란 용어는 구약성경에 2번 나오고, 신약성경에서는 루카복음서만 단 한 번 여기서 사용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다고 하셨습니다. 과거형 동사를 사용하여 말씀하십니다. 이는 취소할 수 없는 최종적 단언이란 뜻입니다.

 

요나는 하느님께서 유다백성의 원수인 앗시리아 수도 니네베로 가서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고 외치라는 명령을 듣고 화가 났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니네베와 반대쪽인 스페인 지역 타르시스로 도망쳤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폭풍을 일으키셨고 요나가 탄 배가 침몰하기 직전에 요나는 자청하여 고래 밥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물고기를 시켜 요나를 육지에 뱉어내게 하셨습니다. 다시 육지로 살아 돌아온 요나는 결국 하느님의 뜻대로 니네베로 가서 외쳤습니다. 요나는 혹시라도 그들이 금세 회개할까 염려되었는지 하느님께서 시키신 말씀이외에 아무 것도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선언만으로도 곧장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행동을 실천하였습니다. 요나는 니네베까지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못마땅했기에 어떤 구체적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의 악행을 지적하지도 않았고 누가 시켰는지, 어떤 사연이 담겼는지, 누가 징벌을 내리는지 등등 어떤 자초지종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경고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나타나 사십 일 뒤에 무너진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 어떤 기적이나 표징을 보여준 적도 없었고, 강조하거나 살을 붙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말만 듣고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모두 단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임금마저 자루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아 칙령을 내려 하느님께 부르짖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자기들의 식민지 사람이 와서 외친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를 전혀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행여 악의로 그런 저주를 퍼부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는데 왕까지 나서서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잠시 생각해봅니다. 왜정시대 때 어떤 조선 사람이 일본 동경에 가서 40일 뒤에 동경이 무너질 거라고 외쳤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을 떠올리기조차 싫어집니다.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요나의 선언을 받아들였던 니네베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우선 요나가 이방인이며 식민지 사람이라는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았습니다. 요나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그의 진정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아무 상관도 없는 나라에까지 와서 자칫하다가는 몰매 맞을 짓을 하는지 숙고해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내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들 중에 현명한 사람이 나서서 단식을 선포하고 자루옷을 입었습니다. 최고 결정권자인 왕에게 보고하여 판단을 내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러자 왕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소든 양이든 아무것도 맛보지 마라.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 하느님께서 다시 마음을 돌리시고 그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면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장자는 노나라 임금과 바닷새 우화를 통해 선입견이 지니는 폐해를 설명합니다. 어느 날 귀한 바닷새 한 마리가 노나라에 날아들었습니다. 그것을 상서롭지 않게 여긴 임금이 궁궐에 새장을 만들어 가두어 놓고는, 귀한 술과 음악을 연주해 주었습니다. 소와 돼지를 잡아 새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바닷새는 어리둥절하여 슬퍼하기만 할뿐 식음을 전폐하다가 사흘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장자는 타자를 만날 때에는 우선 자신의 선입견(成心)을 철저하게 비워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왕이고 상대가 미물일지라도 말입니다. 상대방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대접은 관심과 사랑이 아니라 폭력이고 죽음을 낳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랬습니다. 유대인들의 선입견도 역시 예수님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장자는 선입견을 성심(成心)이라고 부릅니다.

 

여행자가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 닿으면 비로소 고향의 모습이 새롭게 보인다고 합니다.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니네베 사람들도 요나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볼 기회를 얻은 것이며 그 호기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낯설게 거리두기를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고 은총과 용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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