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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3.1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12 조회수1,24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년 3월 12일

사순 제2주일

제1독서 창세 12,1-4ㄱ

그 무렵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3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제2독서 2티모 1,8ㄴ-10

사랑하는 그대여,

 8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복음 마태 17,1-9

그 무렵

1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2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3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4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5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6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

일어나라.

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8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저는 28년 전, 서울의 혜화동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 대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해서 깜짝 놀랐던 사실 하나는

사제를 만드는 신학교이기 때문에

남자만 있을 줄 알았는데 여학생이

있다는 것이었지요.

 처음에는 ‘수녀님 지망생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녀님 지망생이 아니라,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온 일반 평신도

여학생이라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막 졸업하고서

 신학교에 들어간 혈기왕성한

신학생들이 여학생들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종종 여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했지요.
한 번은 동기 신학생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한 친구가 같은 학년인 여학생이

자신에게 자꾸만 말을 걸고

부탁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던

모든 신학생들이 자기도 그런 일이

있었다면서 말을 해줍니다.

이런 식의 대화입니다. 

“걔가 자꾸만 내게 말을 걸고

이상한 부탁도 해.”
“아니, 너한테도 그랬어?

나한테도 그러던데?”
“너희 모두 그랬구나.

나도 그런 일이 자주 있어서

 고민했거든.

걔 도대체 왜 그러니?”
동기 신학생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불쾌했습니다.

그 여학생이 신부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온 신학생에게

접근해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사실 저한테는 단 한 번도 말을

건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여학생들이

말도 붙이면서

가까이 하려는 것 같은데,

왜 저한테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소외감이 들고,

그 친구들이 부럽더군요.
별 것을 다 부러워했던 저였지요.

 사실 평생 독신으로 살 것을

다짐하면서 신학교에 들어왔다면,

 여학생들에게 인기 많은 것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사랑을 많이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더 부러워해야 합니다.

쓸데없는 것을 부러워하면서

괜한 고민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많은 것들을 부러워합니다.

재산이 많은 것, 안정된 직장과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 건강한 것,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등등

이 세상 것들에 대한 부러움을

간직하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정말로

부러워 할 것인지를 따져보십시오.

 쓸데없는 부러움으로

지금 정작 해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

3명을 데리고 타볼산에 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룩한 변모를 목격하지요.

 더구나 이곳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모세와 예레미야

예언자도 있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이 순간이

너무나 부러웠던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스승님께 여기에 눌러

살자면서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합니다.

하긴 바쁜 전교 여행을 중에

얼마나 피곤했을까요?

따라서 존경하는 분들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을 영원히 누리고 싶은

 유혹이 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변모사건은 예수님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것으로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베드로의 부러움은

쓸데없는 부러움,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 유혹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어떻게 보면 짧다고 말할 수 있는

이 세상 안에서 순간의 만족을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주님 안에서

환하게 변모될 수 있습니다.

가족들 모두 무릎을

맞대고 앉아 고구마를 쪄 먹는 것,

그것만 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박경리)

어제 갑곶성지에서 피정을 했던

김포지구 모든 성인들의 모후 Co.

"우리의 인식적 지성을

뛰어넘는 분."

하느님을 향한 열망에 대하여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하여 우리는

이 정도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인식적 지성을

넘어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신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느님을 자신의

인식적 지성 안에 계시는 분으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내 지식 밖의 일이

생기게 될 때 하느님께

 불평불만을 던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정확히

모르는 우리, 그렇기 때문에

늘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느님의 뜻을 쫓아나갈 때

어느 순간, 하느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조금씩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갑곶성지에서 음악 봉사를 해주시는

촌성당의 메아리 밴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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