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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1 토/ 내 아집과 편견과 사고의 틀을 벗어버리고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31 조회수1,908 추천수6 반대(0) 신고




사순 4주 토, 요한 7,40-53(17.4.1)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요한 7,41)





Discussion about the Origin of the Messiah






내 아집과 편견과 사고의 틀을 벗어버리고

 

하느님의 심판을 전했다는 이유로 자기 동족들의 미움을 산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기 처지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다.”(11,19)며 탄식합니다. 그는 그들의 살의에 가득 찬 태도 때문에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마저 위기감을 느낍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몰랐다며 주님께 복수해 달라고 청합니다(11,20). 그는 고통스런 죽음을 맞지만 그 안에서 주님의 뜻이 드러납니다.

예레미야에게서 드러났던 하느님의 뜻은 예수님을 통해 더 뚜렷이 드러납니다. 군중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참 예언자라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메시아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메시아가 갈릴래아 나올 리가 없다고 합니다(7,40-44). 그들 눈에는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만 들어왔던 것이지요.

한편 성전 경비병들은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7,46)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잡으러갔으나 감히 그분을 잡지 못하고 그냥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자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오만에 가득 차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7,49)라고 경멸합니다.

왜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요?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과 명예욕, 자신들의 사고의 틀에 묶여 참 하느님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고정관념, 자신의 지식, 신념, 자신만의 잣대로 감히 하느님을 저울질 하고 세속화 한 질서 안에 하느님을 가두어버리려 한 것입니다.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렇게 자기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면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부정하고 그에게 호의를 드러내는 군중을 저주합니다. 율법에 터 잡아 공정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예수님의 권리를 옹호하려는 니코데모를 모욕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들의 음모와 악의와 적대심 한복판에서 하느님의 뜻은 드러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곧 하느님을 나의 사고의 틀이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가두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그분의 정체성은 논쟁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통해 드러나는 자애로우신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체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 우리는 나의 잣대를 버려야 합니다. 나의 잣대로 하느님을 정의하고 판단하는 자체가 교만입니다. 하느님을 나의 아집과 편견, 사고의 틀로 보고 만나려고 하는 태도야말로 하느님을 도구화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또한 사회 인습과 제도의 틀 안에 하느님을 가두려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접하게 되는 다른 이들의 악의와 악행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고 다른 사람의 선의를 무시하는 사람은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고 사랑에서 멀어져 스스로를 단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숨겨진 일조차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악의와 음모, 거짓과 불의를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드러내고야 마심을 믿어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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