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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순 제4주간 토요일 독서와 복음 묵상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1 조회수1,544 추천수1 반대(0) 신고

 

사순 제4주간 토요일 독서와 복음 묵상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제1독서 (예레11,18-20) 

 

그런데도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 나무를 열매째 베어 버리자. 그를 산 이들의 땅에서 없애 버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 (19)

 

예레미야서 11장 19절에서 예레메야는 자신을 '순한 어린양'으로 비유한다. 11장 19절'저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에 해당하는 '로 야다으티'(lo yadahthi)를 통해 '순한 어린양'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 준다. 

 

예레미야서 11장 18절에서 밝힌 것처럼 주님의 계시가 아니고서는 예레미야가 자신에 대한 살해 음모를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을 '순한 어린양'의 비유와 '저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라는  직접적인 고백을 통해 밝히고 있는 것이다. 

 

'순한 어린양'에 해당하는 '케베스 알루프'(kebes alluph) '길들여짐', '고분고분함' 이라는 의미의 명사 '알루프'(alluph)'어린양'(레위14,5; '어린 숫양')이라는 의미의 명사 '케베스'(kebes)로 이루어졌다. 

 

아마 사무엘 하권 12장 3절 나탄의 비유에서 나오는 것처럼 '케베스 알루프'집안에서 키우는 길들여진 어린양 (작은 암양)을 가리킬 수도 있다. 

 

또한 본절에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자신이 도살당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순순히 도살장으로 끌려갈 만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한편 이처럼 예레미야는 현실에 어두운 반면에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자들은 아주 용이주도 하였다. 이것은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이란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먼저 '없애려고'에 해당하는 '하셰부'(hashebu)'계산하다', '세어보다'(창세15,5), '짜다', '꼬다'(탈출28,15), '궁리하다', '고안하다' (탈출35,32)라는 의미의 동사 '하샤브'(hashab) 완료형이다. 이 동사는 바로 이 '하샤브'(hashab)동사에서 유래한 '마하샤보트'(mahashaboth) 목적어로 취하고 있다. 

 

'음모를 꾸미는 줄'에 해당하는  '마하샤보트'(mahashaboth)'꾀', '계획'(잠언15,16), '모략', '계략'(다니엘11,25), 모해', '흉계' (애가3,61), '계획'(잠언19,21), '생각'(이사55,7)이라는 명사 '마하샤바'(mahashaba) 복수형이다. 

 

즉 본문에서는 실을 가지고 천을 짜듯이 매우 정교하고 철저하게 궁리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  이 동사의 명사형 북수형을 목적으로 취하여 아나톳 사람들이 일시와 장소 그리고 전개 과정 등에서 철두철미한 살해 계획을 모의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님의 말씀 선포라는 예언직을 수행한 것에 대한 백성들의 응답이처럼 그 예언자를 죽이겠다는 치밀하고도 의도적인 살해 계획이라는 사실 주님의 계시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 예레미야는 너무나 큰 절망과 낙심에 빠졌을 것이다. 

 

한편 예레미야서 11장 19절 후반부아나톳 사람들이 멸망시켜 버리겠다고 하는 열매와 나무는 무엇인가?  겉으로 보면, '나무'는 분명 '예레미야'를 가리키기에 그의 '열매' 예레미야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예레미야서 17장 1절과 2절에 의하면, 예레미야는 독신 생활을 명받았고 그로 인해 자녀를 둘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후의 기록을 보아도 예레미야의 결혼나 자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므로 본문의 '열매'라는 표현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본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것을 예레미야의 입에서 증거되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본다. 

 

즉 당시 아나톳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거부하고 박해할 때 다른 이유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가 전하는 하느님 말씀 때문에 그를 거부하고 그 모든 것을 없애 버리려 했던 것이다.

 

 


 

 

사순 제4주간 토요일 복음 (요한7,40-53)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 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요?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49~52)

 

예수님께 대해 약간의 호의적인 반응이라도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 질책하던(요한7,47) 바리사이들은 이제 그들을 율법도 모르는 자로 매도하며 저주까지 퍼붓고 있다.

 

여기서 '저 군중'에 해당하는 '호 오클로스 후토스'(ho ochlos houtos; this people)랍비 문학에 나오는 '암 하아레츠'(am haarets), '땅의 백성'과 동일한 뜻이다. 

 

랍비들의 규범은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들과 관련하여 6가지 사실을 규정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증거를 위임하거나 취하지 말 것, 그들에게 비밀을 말하지 말 것, 그들을 고아의 보호자로 삼지 말 것, 그들에게 자선비의 관리를 맡기지 말 것, 일체의 매매 행위와 친교를 하지 말 것을 규정한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율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저주받은 무리로 여겼다. 이것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독선적인 우월감과 아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요한 복음 7장 50절'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에서 '말하였다'로  번역된 '레게이'(legei; asked) '레고'(lego)3인칭 단수 현재 시제로서 그의 등장이 극적이었음을 나타낸다. 

 

그 이유는 요한 복음 7장 45절'돌아오자', '물었다' 그리고 7장 46절의  '대답하자'가 모두 부정 과거형으로 나오는 반면에, 여기 '말하였다'만  현재형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니코데모의 말이 당국자들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며, 그 어조가 매우 적극적이고 반복적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레고'(lego)라는 단어는 독자들로 하여금 니코데모가 말했다는 사실보다는 그 말의 내용에 관심을 집중하게 한다. '그들'에 해당하는 '아우투스'(autous; them)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여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루카18,9)을 가리킨다. 

 

니코데모는 무조건 예수님께 대해 적대적으로 대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태도가 옳지 못하다고 판단했기에, 용기를 내어 그 부당성을 지적했다. 니코데모는 불의를 보고서도 자신에게 돌아올 이해 득실을 따져서 가만히 침묵하는 그런 자는 아니었다. 

 

한편 요한 복음 7장 51절에서 니코데모는 율법이 사람을 판결하는 원칙을 당국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니코데모가 여기서 변호하고 있는 대상인 '그 사람'에 해당하는 '톤 안트로폰' (ton anthropon; the man)'a man'이나 'the man'으로 영역된다. 'a man'예수님이 아닌 다른 사람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는 반면에, 'the man'그 대상이 예수님께 국한된다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 니코데모는 산헤드린 최고 의회가 이미 논의를 마친, 예수님을 제거하는 문제에 대해 항의의 뜻을 전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the man'이 옳은 것 같다. 

 

또한 '심판하게'에 해당하는 '크리네이'(krinei; judge; condemn)'판결하다', '단죄하다', '언도하다', '처벌하다' 등의 포괄적 의미를 지니는 법적 술어로 쓰였다. 

 

니코데모는 여기서 율법이 판결하는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말을 들어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행위(하는 일)을 알아보는 것이다. '본인의 말을 들어보고'먼저 당사자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며, '하는 일을 알아보고'그가 무엇을 행하였는지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아'로 번역된 '그노'(gno; know)'기노스코'(ginosko)부정 과거 가정법인데, 이 동사는 관찰과 경험에 의해서 아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관찰이라는 확인 절차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니코데모가 지적한 것이다. 

 

율법에 정통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도 당연히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을 알고는 있었겠지만, 이미 편견과 선입견 속에 사로잡혀 판단력을 상실한 그들에게 그의 제안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끝으로, 요한 복음 7장 52절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라는 질문은 이미 니코데모가 갈릴래아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지만, 동시에 니코데모를 예수님을 지지하는 무리와 동등하게 취급하여 비난하는 내용담고 있다. 그들은 진실을 말했던 니코데모를 무시해 버리고, 예수님을 변호하려는 그의 입을 막아 버리고 있다. 

 

여기서 '예언자'를 나타내는 '프로페테스'(prophetes; prophet)에는 정관사 '호'(ho; the)가 붙어 있지 않다. 이것은 메시야와 동일시되는 신명기 18장 15절에 나오는 '나와(모세와) 같은 예언자'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의 예언자를 모두 통칭하는 것이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메시야를 포함하여 그 어떤 예언자도 갈릴래아에서 나올 수 없다고 단정한 것이다. 하지만 예언자 요나, 호세아, 나훔이 갈릴래아 출신이고, 아모스와 엘리야 및 엘리사도 갈릴래아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2열왕14,25참조). 

 

그러나 당시 바리사이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할 정도로 지독한 지역적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 잡혀 있었기에, 진리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2015년 3월 21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주님 저희에게 편견과 선입견에서 벗어나 성경의 말씀을 진리로 볼수 있는 마음을 열어주소서 ~~아멘.

다른분의 글을 옮김에 죄송도 한데요~~전. 성경을 올바로 알고 해설하는 '묵방'이 됐으면 합니다.


 

 http://club.catholic.or.kr/dydtjdhktkfkd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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