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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0401 - 사순 제4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 김태환 요셉 신부님
작성자김진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1 조회수1,567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7
04 01 () 가해 사순 제4주간 토요일 복음 묵상


예레미야서 11,18-20
요한복음 7,40-53


김태환 요셉 신부님


이제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며 회개와 새로운 다짐들을 세운지도 한 달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이 사순시기 동안 아주 구체적으로 하느님께 충실하지 못했던 것들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일들을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으로 자신을 가다듬어 새롭게 회개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 시키신 일. 그러니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이중계명. 그리고 맡겨진 일들에 정성을 다해야 하는데 마음은 간절한데 몸이 따르질 않습니다. 귀에 거슬리는 회개하라. 사랑하라는 지겨운 말보다 오늘 휴일을 보낼 계획들이 더 매력적입니다.

외국 가서 살려면 그 나라말을 배워야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말을 배우는 첫걸음은 많이 듣고 많이 따라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나라에서 하느님과 이야기하려면 하느님 나라의 언어를 많이 듣고 많이 따라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말하려면 먼저 하느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듣는 것이 바로 기도의 시작이요 마침입니다. 헌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남아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정성을 다해 잘 들었기에 내가 구원된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은 나는 구원받았다. 나는 정말 잘났다. 이러면 안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뭐 좀 아는 사람들은 겸손합니다. 구원은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느님의 것을 우리 것인 양 착복하거나 호령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은 하느님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했거나 내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무상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무상으로 주어지는 구원을 얻기 위해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믿음 곧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 신자로 거듭 태어나고 겸손하게 구원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신앙을 얻기 위해 우리가 그분의 몸을 모시는 영성체 때 참으로 경건한 자세를 취하듯이 하느님 말씀을 듣는 데에도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정성을 다해 들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군중의 반응. (예언자시다. 메시아시다) 그 반응을 괴로워하는 지도자들의 논쟁을 들려줍니다.

예수님이 누구냐 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신자에게는 물론 신자 아닌 분들에게도 관심거리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고 고난과 죽음 부활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이건 어떤 인간의 범주에 넣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어떤 틀 속에 넣는다. 이것부터 조금 이상합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우리와 다른 분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현실적으로 그렇게 쉽게 수용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계획과 달리 일이 진행되거나 혹은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발생할 때, 그때 이것이 하느님의 뜻은 아닐까라고 묻는 일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 예언자들도 하느님의 부르심이나 제안에 처음부터 흔쾌히 응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가진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불안감, 생명의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 상황,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그분의 말씀 등으로 인해 그분의 초대에 저항을 갖는 일이 우리가 신앙의 모범으로 삼는 인물들에게도 흔히 있었습니다. 그 저항은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헌데 우리는 이 사순 시기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묵상을 하면서 너무 쉽게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다 이해한 듯한 태도를 가집니다. 너무 쉽게 고통의 모습을 또 부활의 기쁨을 표현해 냅니다.

허나 제자들에게서처럼 그분의 수난을 실제적으로 받아들이긴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경비병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름을 체험했습니다. 헌데 똑똑한 지도자들은 “누가 그를 믿더냐?” 라고 나무라고 집으로 가버립니다. 경비병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지도자들은 안 들었습니다.

잠시 우리들의 가정을 살펴봅시다. 우리들의 가정은 기본적으로 부모님과 자녀로 구성되어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사셨듯이 우리는 부모님과 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에서 우선 우리 부모님들을 보면, 아주 바쁘십니다. 자녀들에게 해 주어야 할 일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랴, 입히랴, 먹이랴, 그야말로 하루 일과 전체가 우리 자녀들을 위한 시간으로 꽉 차 있다고 해도 그리 지나친 표현은 아닐 듯싶습니다.

반면, 자녀의 도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어쩌면 살아 있는 그 자체가 우선 최대의 도리라 할 수 있고 조금 나가면 건강하게 어른들이 걱정하는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자기 잘 되는 길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아주 훌륭한 자녀가 됩니다.

헌데 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수난의 길을 준비하고 있을 때, 제자들이 현세적인 메시아만을 찾듯이 부모님과 자녀들의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사순절의 의미를 바로 알아듣고 그 의미를 살려 신앙인답게 살아 가려고 다짐했다면 사랑의 안테나를 세우고 서로 귀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비병은 들었고 지도자들은 안 들었습니다. 보너스로 추가하면 지도자들이 이미 알고 경험했던 것이 걸림돌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김태환 요셉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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