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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4.0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1 조회수1,527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7년 4월 1일

사순 제4주간 토요일

제1독서 예레 11,18-20

18 주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들의

악행을 보여 주셨습니다.
19 그런데도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

저 나무를

열매째 베어 버리자.

그를 산 이들의 땅에서

 없애 버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
20 그러나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복음 요한 7,40-53

그때에 예수님의

40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41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42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43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44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45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46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47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48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49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51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52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53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7박 9일간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마치고 다시

갑곶성지로 돌아왔습니다.

 최고의 성지,

 유일하게 Holy Land라고

부를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7일간을 지내면서

참 많은 것을 묵상할 수 있는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벌써

 5번째의 순례였습니다.

너무나 익숙하기에

별 감응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단지 함께 하는

신자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가는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주변의 분들도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또 가? 이스라엘만

왜 이렇게 많이 가니?”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더욱 더 가깝게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고

그래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횟수가

거듭될수록 더욱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또한 그 깊이도

커졌던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더욱 더 주님을 알게 되었고,

주님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단 한 번만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갑곶성지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우연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 뭐 볼 것도 없던데?”
성지는 보는 곳이 아니라

기도하고 묵상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방문하면

할수록 더 깊이 느끼고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새롭고 큰 힘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너무나도

쉽게 단정하고 결론을 지을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인상만으로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것을

판단했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계속 보고 만나면서

상대방 안에 계신 주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들은 섣부른 판단으로

주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군중들이

 “저분은 참으로 예언자시다.

메시아시다.”라고 말하자,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하면서 근거 없는 말이라면서

무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갈릴래아 나자렛 출신인

예수님은 출신 자체의

 문제 때문에

메시아가 될 수 없고,

또한 예언자고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맞았을까요?
사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과 힘이 있는

 말씀만을 보면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한 가지 부분만을 보면서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참 메시아가

바로 옆에서 말씀하시고

놀라운 기적을 행하고

있음에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나의 자리에서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선입견을

려놓아야 합니다.

 대신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서 우리의 삶 안에서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단 한 번의 따름이 아니라,

끊임없는 따름이

주님을 만나게 해 줍니다.

우리 자신의 발견은

 세상의 발견보다 중요하다.

(찰스 핸디)

예루살렘으로 가는 차 안에서 찍은 도로 모습입니다.

"옷의 중요함."

이스라엘 성지 순례

중에서 있었던 일이

하나 떠오릅니다.

그날의 순례를 모두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가볍게 샤워를 한 뒤에

저녁식사를 위해 간편한

 복장을 하고서 식당에

내려갔습니다.

(순례가 다 끝난 뒤에는 편한 복장을 합니다)

 우리 순례팀이 아닌

한국에서 오신 다른 순례팀들이

 식당에 가득하시더군요.

아무도 저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제 묵상 글을 보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은가 보다 싶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에 내려갔습니다.

식사 후 곧바로 순례를 떠나기

때문에 저는 사제임을 알 수 있는

끌러지셔츠를 입고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입구에서부터 어제 보았던

순례객들이 저를 보고서

 “빠다킹 신부님 맞죠?”,

“저 신부님 글을

계속 보고 있어요.”

등등의 말씀을 하시며

반갑게 인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악수도 참 많이 하고,

또 같이 사진도

 찍어야만 했습니다.
왜 전날에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는데,

다음 날 아침에는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보았을까요?

바로 복장 때문입니다.

무엇을 입고 있느냐에 따라

‘나’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옷을

입어야 할까요?

 바로 믿음의 옷, 희망의 옷,

사랑의 옷을 입어야 주님께

당신의 참 제자임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세속적인 옷만을 입으려고

한다면 절대로 주님께서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옷만이 아니라,

내 마음을 아름답게 감쌀 수 있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첫째날 묵었던 호텔 안의 경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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