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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 - 윤경재 요셉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2 조회수2,174 추천수10 반대(0) 신고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

 

- 윤경재 요셉

 

  

 

 

 

예수께서는 라자로가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이나 더 머무르셨습니다. 이는 그토록 사랑한 친구를 도와 주고자하는 예수님 자신의 원의보다 오직 아버지의 뜻에 따라 행동하심으로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제자들의 믿음은 더욱 확고해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요한11,10)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라고 분명하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우리 안에 빛을 들여놔야 하는 것입니다. 그 빛은 우리 안에 살아계신 성령의 빛입니다. 예수께서 하느님의 영광을 입고 부활하심으로써 이 세상에 선물로 오신 파라클레토스 성령이십니다.

 

그믐이라 별빛만 찬란한 캄캄한 밤중에 한 나그네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고맙게도 멀리서 작은 등불이 움직이는 게 보여 그 등불을 목표로 삼아 걸었습니다.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잠시 후 맞은편에서 등불을 들고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는 소경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나그네가 소경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신데 왜 등불을 들고 다니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소경이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이 등불을 들고 다니면 소경이 걷고 있다는 것을 눈 뜬 사람들이 잘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야 저도 부딪치지 않고 걷게 되겠죠.”

 

 

사람들은 자기가 말하지 않아도 남들이 자기 마음을 알아차릴 거라 기대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심리학 연구에서 이것은 착각이라고 결론이 났습니다. 이런 착각을 투명성 착각이라고 부릅니다. 자기가 자신의 상태를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누구도 알아줄 리가 없으며 서로 부딪칠 뿐입니다. 이 예화에서 소경이 등불을 든 이유도 이런 투명성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에서 우리는 아직도 두 눈이 먼 소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등불을 켜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신앙인이라는 표시를 하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줄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알리지 않는 게 살아가는 데 더 편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신앙인이라는 표시는 그저 성호를 긋는 다거나 십자가목거리와 묵주반지를 착용한다고 해서 드러나는 게 아닙니다. 내 모든 행동이 욕심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우리더러 사랑, 기쁨, 평화와 인내, 친절, 선행 그리고 성실,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나누어 보면, 사랑과 기쁨과 평화는 신앙생활의 결과입니다. 자기와 남, 공동체가 얻는 열매입니다. 인내, 친절, 선행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규범입니다. 성실, 온유, 절제는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이렇게 성령은 자신과 남과 공동체가 모두 하나가 되는 길을 밝혀줍니다. 결코 자기 하나만 깨달음의 경지로 도달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통하지 않고 살면 참 신앙인이 아니라는 통렬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숨도 쉬지 말아야합니다. 투명성 착각은 남뿐만 아니라 자기도 기만하는 어리석음입니다.

 

솔직한 성격의 마르타는 예수님께 등불을 켜달라고 매달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이 부탁은 단지 자신만을 위한 부탁이 아니었습니다. 자신과 마리아 그리고 죽은 라자로를 위한 등불을 점화시켜달라고 매달린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아직 부족한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개념으로만 부활을 이해한 것입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도 역시 남에게 들은 소리를 가지고 자기가 안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소문으로 들은 진리는 아직 자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체험이 뒷받침 되어야 진정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개념은 체험으로 입증되어야 그 힘을 얻습니다.

 

욥의 고백이 연상됩니다. 욥은 세상 이면에 하느님의 뜻이 따로 있다는 것을 체험한 뒤에 그 모든 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42,5~6)

 

예수께서는 이제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 계획하신 일을 시작할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그 첫 단추를 여셨습니다. 전대미문의 체험을 열어주셨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뿌리가 내린 다음 열매가 맺으며, 하느님의 일은 최종 목표를 향하여 첫 걸음을 내딛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 하느님의 일은 예수님의 부활을 향하여 그와 비슷한 사건들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라고 인간적 눈에 머물러 있는 마르타의 의심을 벗겨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습니다.

 

그 순간은 무덤 속에서 나온 라자로와 함께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각자 등불 하나씩을 자신 안에 점화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등불은 그들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밝혀줄 희망과 진리의 불빛이었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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