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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2."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너는 이것을 믿느냐?"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작성자송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2 조회수1,938 추천수0 반대(0) 신고

요한 11,1-45(사순 5주 주일)

 

 

 

<사순 5 주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라자로의 소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는 이와 함께 울어주는 봄바람 같은 이야기 입니다. 어둠의 동굴에 갇혀있는 이를 불러내는 봄 햇살 같은 이야기 입니다. 주저앉아 웅크리고 죽어 있는 이를, 빛으로 불러내는 봄비 같은 생명 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라자로의 소생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은 라자로를 살리는 예수님, 그는 누구인가?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이십니다. <요한복음>의 머리말에서 장엄하게 예고된 그 “생명”입니다.빛이신 생명입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하신 일은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죽음의 어둠 속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생명이시오, 빛이신 까닭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인 부활에 대한 믿음에로 초대하십니다. 그것은 “나는 안다”에서,“나는 믿는다.”에로의 초대입니다.곧 ‘당신이 생명이요 부활임에 대한 믿음’에로의 초대입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11,22)라고 고백할 뿐입니다. 곧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알고 있다.”(오이다)고 고백할 뿐, “믿는다.”(피스튀오)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11,23) 라고 말씀할 때에도, 여전히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11,23) 라고, “안다.”라고만 고백할 뿐입니다.

 

사실,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한 것이다.”(1코린 8,2)

 

결국,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죽은 오빠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예수님의 신적 능력을 믿지는 못한 까닭입니다.예수님을 마주하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부활과 생명을 이해하지는 못한 까닭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마르타를 “믿음”에로 초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6)

 

 

 

이제, ‘안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믿을 때라야, 그 믿는 이에게 부활과 생명이 부여된다는 말씀입니다. 곧 부활과 생명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그 “믿음”은 구체적인 삶 안에서 실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부활은 먼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활은 믿음 안에서 현재의 사건이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부활신앙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일상과 현재를 변화시킵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믿어야 하는 진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죽음 이후에야 얻을 수 있는 생명이 아니라, 현세와 현세를 넘어서 얻을 수 있는 풍만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부활을 믿느냐?’는 질문에, 동문서답을 합니다.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요한 11,27)

 

 

 

물론, 그리스도이시오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함은 당신을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 것임을 믿는 것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부활에 대한 직접적인 믿음에 가 닿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동굴 무덤의 돌을 치우라고 했을 때, 아직 믿지 못하고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요한11,39)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믿음을 일깨우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한 11,40)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너는 이것을 믿느냐?”

 

 

 

“예, 주님! 저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고, “예,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라고 응답해야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구체적인 삶 안에서 증거 해야할 일입니다.그럴 때, 우리의 삶 안에 이미 부활은 열려지고, 영원한 생명이 이미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안에 이루어지고 있는 이 영원한 생명을 잘 간직하고 가꾸어야할 일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바로 여기”에 부활과 생명이 충만해 있음을 드러내야할 일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께서는 불신과 어둠에 묻혀있는 저희를 당신 생명의 빛에로 이끌어주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오너라.”(요한 11,4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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