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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생명을 누리는 길은?)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2 조회수1,865 추천수1 반대(0) 신고

 

안드레아신부님복음묵상

"생명을 누리는 길은?"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생활하시면서 가족들과

이웃들의 단점이

더 잘 보였나요?

아니면 장점들이

더 잘 보였나요?

그리고 성체로 오신

그리스도께 당신의

사랑과 겸손을

닮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드리고 난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형제 자매님,

오늘 제1독서는

 예언자 에제키엘이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기록한 부분

(33-37)

결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배생활이 계속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완전히

희망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끝없는 절망감으로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37,11)

라고 말하면서 염세주의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제키엘은

하느님으로부터 들은

희망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하느님을 떠난 삶은

희망이 없는 삶이기에

무덤에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가르쳐줍니다.

죽음은 인간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의

관계가 계속 유지되는 한

그 죽음을 뛰어넘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무덤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영을 불어넣어

다시 살려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은

생명을 주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혀기대하지 못했던 것으로

하느님께서 거저 베풀어

주시는 은총입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무덤에 묻혔던

라자로를 다시 살리십니다.

이제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등장하신 것입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라는 마르타의 고백은

우리 모두 갖고 있는

믿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라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마르타가

,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하고

 외치심으로써

죽은 라자로를

무덤에서 일으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은

예수께 대한 믿음이

곧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예수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은총의 생명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잘 믿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그 이유를

밝혀줍니다.

우리가 아직도

육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육 안에 있다는 것은

육체의 요구에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일찍이 대문호 톨스토이는

참회록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젊은 시절은 공명심,

권세욕, 사욕, 애욕,

자만심, 분노, 복수심

이런 정열에

불타던 시절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오직 명예와 돈을 얻기

위해서였으며

문인들과 교제함으로써

추파와 아첨을 소나기처럼

 덮어쓰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톨스토이는

부와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명예와

부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는 열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어둠의

무덤 속에 갇혀있던

톨스토이는 어느 날

톨스토이야, 나오너라.”

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죽음과 같은 어둠에서

 일어난 톨스토이는

70세에 새사람이 되어

부활이라는

 불후의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성령을 우리 안에

모신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육체를 따라

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 사시게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영이

우리 안에 머물 때

우리는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온전히

성령 안에 머물게 됩니다.

성령 안에 있다

(성령을 따라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이기심을

 완전히 버리고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이 형제

자매님 안에 사시기만 하면,

형제 자매님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그때 육체적으로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내면에서 기쁨이 솟아납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러나 톨스토이의

말처럼 내가 권세욕이나

사욕에 사로잡혀 있거나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하고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면

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이미 죽어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사는 길입니다.

라자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다시 살리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를 애타게

부르고 계십니다.

미움과 질투와 시기로

 덮여있는 무덤에서

사랑의 빛으로 나오라고!

하양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박영봉안드레아신부드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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