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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4.03)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3 조회수2,281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7년 4월 3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제1독서 다니 13,41ㄹ-62

그 무렵 회중은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6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47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51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53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

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60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느님을 찬미하였다.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62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복음 요한 8,1-11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이번 이스라엘 성지 순례 중,

주님 탄생 예고 성당에서

들은 이야기 하나를 전합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신부님을 찾아서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 항의를 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가진

성모님을 어떻게 요셉 성인이

받아들일 수 있냐는 것이었지요.

자신의 아기도 아닌데 단지 꿈에

주님의 천사가

말했다는 이유 때문에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신부님께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면서 형제님을

 이해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형제님은 세상에

 어떤 남자가 남의 아이를 가진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냐면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계속해서

따지는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계속된 공격(?)에

신부님께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는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이~~ 요셉 성인도

가만히 계셨는데

왜 형제님께서 난리십니까?”
재미있으라고 하신

 이야기였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솔직히 우리들은

내 일도 아닌 남의 일에

얼마나 많은

간섭을 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틀렸고 잘못되었다면서

쉽게 판단하고 단죄합니다.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그의 잘못만 세상에 드러내려는

모습에서 우리 인간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잘잘못은

전혀 보지 않으려고 하면서

남의 말과 행동에 대한

자신의 판단만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앞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말합니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율법대로 처리하라고 하면

이제까지 말한 사랑은

어떤 의미냐고 따질 것이고,

사랑을 가지고 용서하라고 하면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냐고

따질 생각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 장면에서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간음은 분명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인데,

여인 혼자 있다는 것이지요.

 상식적으로 봐도 간음죄에

해당하지 않는 상황인데도

그들은 무조건 잘못했다면서

끌고 왔던 것입니다.

이렇게 무조건 틀렸고

잘못했다고 우기고 있는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이들은 드디어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죄만을 보았는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차마 돌을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먼저 내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른 이를 판단하고 단죄하는 몫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먼저 내 자신이 깨끗하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주님으로부터

 단죄 받지 않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를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기쁨의 행로의 일부다.

(사라 밴 브레스낙)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잉태소식을 듣는

성모님과 가브리엘 천사.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독수리가

사냥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사냥에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속된 실패에

독수리는 사냥을 포기했을까요?

“나는 실패한 독수리야.”라고

말하면서 좌절하고

 신경쇠약에 빠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독수리는 한 번 정한 먹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다니는

동물로 유명하지요.

몇 차례의 시도 끝에

드디어 사냥에 성공을 합니다.
우리 인간은 독수리보다

귀한 존재가 아닐까요?

그런데 왜 쉽게 좌절을 하고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미천한 동물들도 포기하지

않는데 왜 쉽게

포기하려고만 할까요?

포기를 한다고 해서

엄청난 혜택이 돌아오는 것도

없는데 말이지요. 

자신이 목표로 삼은 것이 있다면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좌절과 절망 속에

 빠질 필요도 없습니다.

포기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분명히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데

분명히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결론을 내래서

포기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커다란 힘을 얻어서

 목표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면 어떨까요?

지금과는 분명히 다른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푸르른 나뭇잎을 보면서 봄이 왔음을 깨닫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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