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5주간 화요일 독서 (민수21,4-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4 조회수2,015 추천수2 반대(0) 신고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민수21,4-9)

 

 

그 무렵 이스라엘은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그러자 주님께서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갈대 바다로 가는 길'(4) 

 

'홍해 길' 사해남부에서 '아라바'(여호11,2) 광야로 거쳐 홍해의 동쪽에 위치한 아카바 만의 항구 도시인 '에츠욘게베르'(1열왕9,26)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 대부분이 사막 지대인 아라바 광야를 거쳐야 하였기 때문에, 매우 거칠고 여행하기에 힘든 길이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1세대 역시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카데스에서 다시 돌이켜  '갈대 바다쪽 광야로' 떠난 적이 있다(민수14,25). 그런데 이제 그 길을 통하여 가나안에서 점차 멀어졌을 뿐 아니라 매우 험한 길을 가게 되었므로 백성들의 마음은 조급해 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신명2,8참조).

 

 

'마음이 조급해졌다'(4)

 

'조급해지다'(상하다)에 해당하는 '티크챠르'(tiqetsar)의 기본형인 '카차르'(qatsar)는 본래 '짧다'(11,23)란 뜻을 지닌 동사인데, 본문과 같이 '마음'에 해당하는 '네페쉬'(nepesh)을 주어로 할 때는 '(마음이)참을 수 없다' 뜻을 지닌다. 

 

'갈대 바다로 가는 길'이 거칠고 험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견디지 못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빨리 들어 가기만을 재촉하며 조급해진 상태를 암시한다. 

 

말하자면 '갈대 바다로 가는 길'을 참아내지 못한 것은 그들의 육체 때문이 아니라, 가나안을 주시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의 성취를 바라며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고 조급했던 그들의 마음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5)

 

'에게'로 번역된 히브리어 전치사 '빼'(be)는 보통 '~안에'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을 대항하여'(against)란 뜻을 가진다.  그리고 '불평하였다'로 번역된 '예답베르'(yedaber)의 기본형인 '따바르'(dabar)'말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이다(민수12,1). 

 

따라서 본문을 직역하면, '그리고(그 백성은) 하느님을 대항하여 그리고 모세를 대항하여 말했다'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칠고 험한 '갈대 바다로 가는 길'로 인하여 그리고  양식도 물도 없음으로 인해서 하느님을 대적하는 죄를 범했던 것이다.  

 

 

'이 보잘것 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5) 

 

먼저 '보잘 것 없는' 해당하는 '켈로겔'(qelogel)이란 형용사의 어근은 '가벼운', '가치없는', '만족스럽지 못한'이란 의미이다. 여기서의 '이 보잘것 없는 양식'은 특별히 '만나' 지칭한다(탈출16,31). 

 

그리고 '진저리가 나다'로 번역된 '카차'(qatsah)의 원형 '쿠츠'(quts)'싫어하다'(잠언3,7), '미워하다'(1열왕11,25), '가증스럽게 여기다' (레위20,23) 등으로 번역되는데, 이 동사는 단순히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서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며, 나아가서는 그 대상이 없어지고 끊어지기를 바라는 감정적 반응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 만나는 출애굽 초기,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 직접 내려 주신 것으로(탈출16,12), 처음에는 꿀처럼 달았던 만나를 그들은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었다. 

 

그러나 이제 40년이 지나가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만나가 싫어지고  질리게 되었을 뿐 아니라 급기야 이 음식에 대한 불평을 하게 되었고, 나아가서 음식을 주신 하느님의 존재와 출애굽 자체마저 원망하게 되고 말았다(민수20,24; 신명9,24). 

 

이것은 곧 하느님께 대한 심각한 불신앙이었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교만한 행위였다.  

 

 

'불뱀들은'(6) 

 

'불뱀들'이란 단어는 '뱀'을 뜻하는 '네하쉬'(nehash)의 복수형인 '네하쉼'(nehashim)'불사르다'(민수19,5), '불타다'(1사무30,3)란 뜻을 지닌 동사 '사라프'(saraph)에서 유래된 명사 '세라핌'(seraphim)이 결합된 것이다. 

 

이 뱀들은 당시 이스라엘이 여행하던 광야 지역(특히 아라바 지역)에 많이 서식하던 독사 가운데 한 종류로서(신명8,15),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이 있는 뱀을 일컫는다. 이 뱀들은 독성이 강해서 한 번 물리게 되면, 그 독이 온 몸에 퍼지며 높은 열이 올라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불뱀'이란 이름은 뱀의 모양 뿐만 아니라 그 맹독성을 강조하여 붙여진 이름이기도 했다.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6) 

 

'보내셨다'에 해당하는 '와에솰라흐'(wayeshalah)'샬라흐'(shalah)강조형에 접속사 '와우'(wau)가 결합된 형태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나 선물등을 '보내다'란 뜻을 지닌 '샬라흐'가 강조형으로 쓰이면 '놓아 주다'(예레14,53), '풀어 주다', '해방하다'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사45,13; 즈카9,11). 

 

본문에서는 하느님께서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고, 심판을 위해 적대적인 것을 풀어 놓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예레9,16; 아모4,10). 

 

하느님께서는 가나안의 진입을 위한 남은 여정을 참아 내지 못하고, 식물과 물이 없음으로 인해 하느님께 교만하게 대적함으로써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는데, 아라바 광야에서 서식하던 '불뱀'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물게 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7)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해당하는 '하타누'(hatanu)'(목표를)빗나가다'(잠언8,36; 욥5,24), '(관습과 윤리상의)범죄하다'(1열왕18,14), '비난할 만하다'(창세43,9; 44,32) 등의 뜻을 지닌 '하다'(hata)의 1인칭 공동 복수형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목표,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잘못된 방향으로 빗나갔다는 의미이다가나안 땅을 주시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이 그들에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잠시의 고난을 인내하지 못하였고, 하느님을 대적하여 교만하게 굴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하느님의 선하신 뜻에서 크게 빗나간 것으로서 하느님께 죄를 범한 것이다. 

 

한편 본구절은 불뱀으로 인한 재난이 자신들의 죄로 인한 하느님의 심판이었다는 것을 백성들이 깨닫고 고백하는 장면이다. 이렇듯 하느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행하시는 징계는 회유와 권면의 채찍질로서, 그들로 하여금 범죄의 길에서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한 선하신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7)

 

'기도하였다'에 해당하는 '이트팔렐'(yithphalel)'팔랄'(phalal)동사의 재귀형으로 '기도하다'(창세20,7; 욥42,8)란 뜻이다. 그런데 이 동사의 강조형은 다소 뜻이 변해 '심판하다', '다스리다' (시편106,30), '중재하다'(1사무2,25) 등의 의미를 갖는다. 

 

더욱이 '~을 위하여' 뜻의 '빼아드'(bead)는 기도, 간구등과 관련하여 예언자들을 포함한 지도자들의 중재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전치사이다 (탈출8,28; 1사무12,19; 2열왕19,4; 예레21,2). 

 

또한 사제들에게 준 명령에도 이 단어를 사용하여 '~을 위하여(뻬아드) 속죄하라'는 권면이 나온다(레위9,7; 에제45,22). 따라서 본문은 모세의 백성을 위한 중보 기도였음을 알 수 있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8) 

 

여기서는 실제적으로 '불뱀'과 모양이 비슷하게 만들어진 '구리뱀'(놋뱀)을 말한다.  겉으로는 불뱀의 형상을 가졌지만, 독이 없었고 또 전혀 해가 없을 뿐 아니라 이를 쳐다보는 자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구리뱀'(놋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이다 (요한3,14.15; 갈라3,13; 골로2,15). 

 

'기둥'(장대)에 해당하는 '네쓰'(nes)'빛나다'(즈카9,16), '눈에 띄다'라는 뜻의 '나싸쓰'(nasas)에서 유래한 말로서 곧 많은 사람들이 눈에 확연히 띄도록,  끝에 헝겊을 매단 '기'(旗)(예레50,2), '기호'(이사11,2)를 뜻하는 말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어떤 공동의 행위를 위해서 또는 중요한 정보의 전달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모이게 하는 '표지'를 의미하고 있다 (이사13,2; 18,3; 31,9; 예레4,21; 에제27,7). 

 

특별히 '네쓰'는 주님을 부르는 명칭 가운데 '주님은 나의 깃발(군기)'이라는 뜻이 있는 '야훼 니씨'(탈출17,15)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기둥'으로 번역된 '네쓰'는 단순한 장대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특별한 표지를 통하여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세운 기(旗)로 보아야 한다. 

 

이 표지는 바로 불뱀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구리뱀이었고, 그 정보는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둥 위에 단 구리뱀은 하나의 '공개적인 전시', '승리의 표지'였다.  치명적인 독을 가진 불뱀을 구리뱀의 형상으로 처형한 하나의 승리적인 전시였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을 예표한다. 즉 십자가의 사건은 한 귀퉁이에서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 수 있게 행해진 것이 아닌,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를 이기셔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자가 되셨다는 하느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널리 선포하시기 위해, 빛이 있는 곳에서 행해진 대승리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8)

 

'보면'으로 번역된 '웨라아'(weraah)에서 접속사 '와우'(wau)는 이어 나오는 '와하이'(wahai; 살게 될 것이다)에 결합된 접속사 '와우'와 연계되어 단순히 '그리고'란 뜻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행동의 계속적인 진행을 나타내어 '그리고 그때'란 뜻을 지닌다.

 

따라서 '웨라아 오토'(weraah otho)'그리고 그것을(기둥에 달린 구리뱀) 바라볼 때'로 번역할 수 있다. 그리고 '살게 될 것이다' 해당하는 '하이'(hai)는 기본형인 '하야'(haya)인데, 이 동사는 '살다'(에스텔4,11), '회생하다'(2열왕13,21)란 뜻을 가진다. 

 

이처럼 '생명의 보존'을 기본적 개념으로 지니면서도 '생명의 회복'이란 보다 적극적인 개념을 동시에 내포하는 동사 '하야'가 쓰인  것은 불뱀에 물려 고통받는 자들을 '치유하시는 하느님'(탈출15,26)의 은혜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또 그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 것이다. 

 

이와 같이 불뱀에 물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자들이 하느님의 은총의 역사(役事)를 덧입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기둥에 달린 구리 뱀'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것은 '구리뱀' 자체에 어떤 신통력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절대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한 것이다.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9) 

 

'쳐다보면'에 해당하는 '웨힙비트'(wehibbit)는 한번을 제외하고(이사5,30), 모든 용례에서 사역형으로만 사용되는 동사 '나바트'(nabat)에 접속사 '와우'(wau)가 결합된 형태로 쓰였다. 

 

'나바트''바라보다'(탈출33,8), '살펴보다'(시편142,5), '감찰하다'(애가5,1), '앙망하다'(시편34,6) 등으로 번역되는데, 특히 이 동사가 '하느님을 바라보다'란 뜻으로 쓰일 때는 '하느님께만 눈을 고정시키고 유일한 도움이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시편34,6; 이사51,1; 22,11). 

 

본문 역시 온전한 믿음과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본다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기둥에 달아놓은 구리뱀을 바라보면 살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고, 그 말씀을 따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불뱀에 물린  상처와 모든 증상이 말끔히 치유되었다.

 

이처럼 '나바트'라는 단어의 의미대로 그들의 '쳐다보는' 행위는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을 통해 구원의 기쁨을 맛 볼수 있게 된 것이었다(요한3,16).

 

 

요한복음3장 14-17절 말씀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제가 배우고 있는 독서 해설이

사랑하는 교우님들에게 다소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올립니다.

오늘도 주님의 사랑 안에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