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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4.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4 조회수2,271 추천수9 반대(0) 신고

 

2017년 4월 4일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제1독서 민수 21,4-9

그 무렵 이스라엘은

4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복음 요한 8,21-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21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언젠가 어떤 분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요즘 우리나라에는

존경할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법정 스님과 같은 존경할 분들이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왜 지금은 그렇게 존경할만한

분들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존경하는 분이

 내 곁에 계신가요?
학창시절에 문제아들은 누구랑

어울려서 지내는 것 같습니까?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여 있다는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존경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지금 나 역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존경할 사람이 많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도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스스로

존경받을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주변에 존경할만한 사람이

없다고 한탄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함께 하신다면 지금의 이러한

고통과 시련 속에서 힘들게

살아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고통과 시련의 문제를

떠나서 스스로가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다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라는

예수님 말씀을

 “자살하겠다는 말인가?”라고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원을 말씀하시는 동시에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분명하게 말씀해주십니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믿고

죄에서 벗어나 주님 뜻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철저히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엄청난

죄 속에 갇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가 존경받을 사람이

되어야 주변에서 존경할만한

많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주님을 믿고 따를 때에야

비로소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먼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뱀에 물린 사람이

느보산 꼭대기에 세워진

 불 뱀을 봐야지만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을 보고

주님을 받아들여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바다에 붓는 한 방울의
물보다 하찮은 것이다.
 하지만 그 한 방울이
없다면 바다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마더 테레사)
느보산의 불뱀.
"책임지는 삶"
“엄마가 그 대학,
그 과를 선택하면
내 인생이
편할 것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은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엄마가 내 인생을 망쳤어.”
자녀의 이런 원망에
 그 어머니는 얼마나
낙담을 했을까요?
그런데 정말로 어머니의
잘못일까요?
사실 어머니께서는
 안내자의 역할만 할 뿐입니다.
최종 결정은 그 삶을 살아가는
자기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지요.
어머니의 안내를 따른 것은
그 길이 맞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어머니가 선택한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인 것입니다.
만약 그 삶이 잘못되었다면,
과감하게 뿌리치지 않은
선택을 했던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남 탓을 함으로 인해서
자기 위로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책임을 남에게 전가해서
자기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부끄러운 심보일 뿐입니다.
이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이루어지는지 모릅니다.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생각들,
책임지지 않으려는 마음들
그래서 자기 자신은 그저
희생양이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구차한 변명일 뿐입니다.
이제는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남에게
 끌려 다니는 소극적인
모습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의 삶을
 일구어내는 용기 있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남의 말을 듣고
따랐다 해도 이 역시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내 삶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습니다.
어제 갔던 카페. 멋지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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