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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4.0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5 조회수2,018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7년 4월 5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

제1독서 다니 3,14-20.91-92.95

그 무렵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14 물었다.

 “사드락, 메삭, 아벳 느고!

너희가 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또 내가 세운 금 상에

절하지도 않는다니,

그것이 사실이냐?

 15 이제라도 뿔 나팔,

 피리, 비파, 삼각금, 수금,

풍적 등 모든 악기 소리가

날 때에 너희가 엎드려,

 내가 만든 상에 절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곧바로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져질 것이다.

그러면 어느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구해 낼 수 있겠느냐?”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가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이 일을 두고 저희는

 임금님께 응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17 임금님, 저희가

 섬기는 하느님께서

저희를 구해 내실 수 있다면,

그분께서는 타오르는

불가마와 임금님의 손에서

저희를 구해 내실 것입니다.

18 임금님,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임금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고,

임금님께서 세우신 금 상에

절하지도 않을 터이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19 그러자 네부카드네자르는

 노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보며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가마를 여느 때에

달구는 것보다

 일곱 배나 더

달구라고 분부하였다.

20 또 군사들 가운데에서

힘센 장정 몇 사람에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를

묶어 타오르는 불가마 속으로

던지라고 분부하였다.
91 그때에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깜짝 놀라 급히 일어서서

 자문관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묶어서 불 속으로 던진

사람은 세 명이 아니더냐?”

그들이 “그렇습니다, 임금님.”

 하고 대답하자,

 92 임금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네 사람이 결박이

풀렸을 뿐만 아니라,

다친 곳 하나 없이

불 속을 거닐고 있다.

그리고 넷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 같구나.”
95 네부카드네자르가 말하였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 느고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자기들의 하느님을 신뢰하여

몸을 바치면서까지 임금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들의

하느님 말고는 다른 어떠한 신도

섬기거나 절하지 않은

당신의 종들을 구해 내셨다.”

복음 요한 8,31-42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32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33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까?”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35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37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39 그들이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

40 그런데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41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강의준비를 위해서

종종 유튜브 동영상을 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충격적인

가짜 뉴스를 많이 보게 됩니다.

 진한 정치색을 띄면서

근거 없는 말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서 올려놓습니다.

정말로 그럴까 싶어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서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가짜 뉴스가 분명했습니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이 가짜 뉴스를

진짜 뉴스로 믿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가짜 뉴스를

진짜 뉴스로 믿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검색을 하면 금방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만을 보려하기 때문에,

진위여부를 떠나 처음에 가졌던

생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 사회 안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을 조장되고 있습니까?
이러한 가짜 뉴스에 빠져서

갈등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이야기만 듣고서 ‘~하더라.’

라고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사람이,

바로 내 자신의 모습일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다른 이들의

 거짓된 말에 ‘기회가 왔다’는

식으로 남들에게

열심히 거짓을 전합니다.

그 결과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사람으로

만들어 공동체에서 떠나도록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은

어떤 것입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사랑이었고,

 이 사랑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와

 하나를 이루신 예수님처럼

우리 역시 서로 일치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짜 뉴스를 세상에

알리는데에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과연 주님의 말씀

안에 머무를 수 있을까요?
당연히 없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게 되면 당연히

거짓과 친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래서 진리 안에

머물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안에 머무를 때

참 제자가 될 수 있으며,

진리를 깨닫게 되어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자주 다른 이들에게 틀렸다고

판단하고 단죄하는 사람들을

잘 보셨으면 합니다.

그들 곁에 많은 이들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따르면서 화합과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 곁에는 늘 많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주님의 말씀이

 펼쳐지는 곳이 편하고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곳에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할까요?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

내가 있을 곳을

결정해 줄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신의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간다.

(제임스 오펜하임)

이번 순례 중에 입었던 인상깊은 제의.

성모님 제의입니다.

"인생의 비결"

(‘따뜻한 동행’ 중에서)

한 젊은이가 새로운 일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향을 떠나기 전,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노인을

찾아가 가르침을 부탁했습니다.
노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글을 써서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이건 지난날 내 삶을 이끌어준

인생의 비결이네.

 하지만 지금은 절반의 글만

줄 테니 나머지 글은 자네가

 다시 돌아오면 주겠네.”
젊은이는 노인이 준

종이를 펼쳐보았습니다.

 “서른 살 이전에는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젊은이는 짧은 글이지만

그것을 늘 품에 지니고 다니며

 힘들 때마다 그 글을 보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성공한

그는 중년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노인을 찾아갔지만

몇 년 전 세상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실망한 채 집을 나서는데

누군가가 불렀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버님이 남기신 글이 있어요.

언젠가 당신이 찾아오면

꼭 전해주라고 하셨어요.”
그는 그제 서야 인생의

비결을 반밖에 받지 못한

사실을 기억하고 바로 봉투 안에

종이를 펼쳐 보았습니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서른 후에는 후회하지 마라”
두려워하지 않는 삶

그리고 후회하지 않는 삶,

어쩌면 누구나 바라는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참 맘처럼

쉽지 않다면서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하지만 정말로 쉽지 않았던

것이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앞선 이야기에 나왔던 청년이

그 글을 늘 품에 안고 다니면서

보았기 때문에 용기를 가지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의 말씀을

품에 안고 다닌다면 어떨까요?

분명히 두려워하지 않는 삶,

후회하지 않는 삶이 불가능한

삶만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갑곶성지에도 봄이 왔습니다.

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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