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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6 목/ 더 넓고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하느님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5 조회수1,893 추천수7 반대(0) 신고




사순 5주 목, 요한 8,51-59(17.4.6)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요한 8,55)











더 넓고 열린 마음으로 만나는 하느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8,51)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아브라함도 예언자들도 죽었는데 그런 말을 한다며, 마귀들렸다고 비난합니다(8,52). 그들은 예수님께, 이미 죽은 아브라함이나 예언자들보다 더 훌륭할 수 없다며, "도대체 누구로 자처하느냐?” 하고 대듭니다(8,53).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원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시며'(8,54), '당신은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8,58)고 알려주십니다. 그러자 유다인들은 더욱 더 분노합니다.

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심한 적대감을 보였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지닌 그릇된 하느님 관(觀)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아브라함의 유일한 하느님은 곧 당연히 선택받은 민족인 자신들의 하느님이시라 믿었던 것입니다. 일종의 신앙적 우월감을 지닌 그들에게 다른 하느님이 보일 턱이 없었습니다.

각자가 지닌 사고 체계와 신앙적 이해의 폭은, 하느님과의 관계와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상념과 민족적 우월감 속에 하느님을 가둬버렸습니다. 그들의 경직되고 폐쇄된 사고체계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알며, 그분의 말씀을 지킴으로써(8,55) 하느님 안에 머무신 예수님은, 오히려 걸림돌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안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하느님 안에 머물려면 열린 마음과 받아들임의 자세가 필수적일 것입니다. 선입견 없이 받아들일 마음과 사고의 유연함이 있어야겠지요. 심지어 역사적 경험과 전통, 하느님에 대한 지식, 신념 등을 모두 내려놓는 그 빈자리에서, 창조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시 유다인들처럼, 완고하고 굳은 마음으로 하느님을 생각 안에만 가두고 있지 않습니까? 특히 내가 아는 성경지식과 신앙체험, 사회 경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폐쇄적이고 제한적인 나만의 신앙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길들여진 사고작용에 나를 맡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와 함께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늘 나를 초월하여 계십니다. 자유로우신 주님께서는, 늘 나의 이해의 지평과 사고체계를 뛰어넘어 계십니다. 그러니 완고함과 고집을 버리고, 하느님의 자유와 열린 창조의 손길 안에, 기꺼이 나를 던질 수 있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내 일상의 삶에 개입하시어 변화시켜주도록, 나의 뜻과 생각과 행동의 습관들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겠습니다.

오늘도, 내 고집과 폐쇄적인 사고의 틀과 해묵은 습관과 전통에 묶여, 눈앞의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바로 곁에서 살아 숨쉬는 말씀의 향기를 밑지 못하고, 형제자매들 안에 살아계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차가운 바위로 서 있지 말아야겠습니다. 유다인들이 격앙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들었던 돌을 스스로에게 던져선 안되겠지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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