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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4.06)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6 조회수2,475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7년 4월 6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제1독서 창세 17,3-9

그 무렵

 3 아브람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자,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4 “나를 보아라.

너와 맺는

내 계약은 이것이다.

너는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될 것이다.

5 너는 더 이상

아브람이라

 불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너의 이름은

아브라함이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6 나는 네가 매우

많은 자손을 낳아,

여러 민족이

되게 하겠다.

너에게서 임금들도

나올 것이다.
7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한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8 나는 네가

나그네살이하는 이 땅,

곧 가나안 땅 전체를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영원한

소유로 주고,

그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9 하느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복음 요한 8,51-59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5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52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당신이

 마귀 들렸다는 것을 알았소.

아브라함도 죽고 예언자들도

 그러하였는데, 당신은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하고 있소.

 53 우리 조상 아브라함도

 죽었는데 당신이 그분보다

 훌륭하다는 말이오?

예언자들도 죽었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로

자처하는 것이오?”
5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나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너희가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하는 바로 그분이시다.

55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말하면 나도 너희와 같은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57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당신은 아직 쉰 살도

되지 않았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다는 말이오?”
5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59 그러자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숨겨 성전 밖으로 나가셨다.

언젠가 길에서 잔뜩
술에 취하신 분께서
길에 지나시는 분들을
향해서 이렇게 외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나 무시하지 말라고. 나 ***
(자신의 이름인 것 같습니다)야.”
이렇게 큰 소리로 이치는
이 분 곁에 누가 있었을까요?
그 어떤 사람도 시빗거리가
되지 않으려고 피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괜히 말을 했다가 싸움으로
불거질 수도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잠시 후에 경찰관이 와서
이 분을 끌고 가셨지만,
지나가는 사람 모두 좋은
인상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전에 읽었던 책 중에서
 ‘꼰대의 육하원칙’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who] “내가 누군지 알아?”,
[what] “뭘 안다고!”,
 [where] “어딜 감히!”,
[when] “왕년에 내가!”,
[how] “어떻게 나한테!”,
[why] “내가 그걸 왜~”
자기를 극단적으로 내세우고
상대를 깔보는
징글징글한 어법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분이 바로
이 ‘꼰대의 육하원칙’을 쓰고
계셨던 분이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어법을
쓴다고 해서 사람들이
존경과 사랑을 주지 않습니다.
부러워하고 또 닮으려는
마음을 품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모습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쓰는 이유가
자기를 좀 알아달라는
호소에 있다고
심리학자들이 말하더군요.
그러나 자기를 알리기
위해서는 강압적인
방법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내게 다가올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내 자신이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 모습을
따라하면 됩니다.
존경과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겸손합니다.
남이 알아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섬기려고 합니다.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보다는 다른 이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더 큰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 모습을 누가 보여주셨을까요?
바로 주님이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면서도
나약한 인간의 몸을 취해서 가장
낮은 자로 오신 주님이십니다.
존경받기 보다는 남을 섬기는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광보다는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큰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오늘 복음의 등장하는
유다인들처럼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다면 무조건 거부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지 알아?
감히 내 말을 따르지 않아?”라면서
부정적으로 상대방을 대합니다.
이제는 주님의 모습을
기억하고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이만이
영원한 죽음에서 벗어나 구원의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밖에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스탕달)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거절해도 괜찮아요"
(‘좋은생각’ 중에서)
중국에서 태어난 지아 장은
어릴 적부터 사업가의 꿈을 품었다.
미국에서 유학던 중 불현 듯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운동화에 바퀴를 달면 어떨까?’
그는 들뜬 마음으로 그림을
그려 삼촌에게 보여 주었다.
한데 돌아온 건 공부나
하라는 질책뿐, 다른 가족도
그가 졸업하고 취직하길 바랐다.
 풀이 죽은 그는 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2년 후, 한 회사가
그의 그림과 똑같은 제품을
출시해 큰 인기를 얻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삼촌에게 물었다.
“그때 제 아이디어를
 왜 거절했어요?”
 “사업성이 없다고 생각해서였지.
네 꿈을 반대한 건 아니야.
히려 큰 포부가 흐뭇했어.”
삼촌의 답에서 그는 거절이
실패가 아닌, 하나의
의견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거절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일부러 황당한 부탁을 해서
거절당하는 데
의연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만약 거절이 두려워
묻지 않았다면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거예요.
내가 먼저 마음을 열면
사람들도 호의를 베풀더라고요.
 진정 필요한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의 승낙이었어요.”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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