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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8 토/ 어디에 기대어 무엇을 행할까? - 기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7 조회수2,887 추천수4 반대(0) 신고




사순 5주 토, 요한 11,45-56(17.4.8)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요한 11,52)





Session of the Sanhedrin






어디에 기대어 무엇을 행할까?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유배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귀향과 새로운 다윗 왕조의 복원을 약속하십니다(에제 37,21.23).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당신 본성에 충실하고, 그로써 당신이 참 하느님이심을 알리고, 뭇 민족들에게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들을 구원하려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영원히 다스릴 새로운 임금이요 유일한 목자인, 다윗의 지팡이 아래 모이게 해주실 것입니다(37,24). 그들과 영원한 평화의 계약을 맺으시고, 다시 한 번 예전처럼 그들 가운데에, 그들의 성전에 영원히 머무르실 것입니다(37,26-28).

그런데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여러 표징들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자(요한 11,45),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대책 회의를 열어, 그분을 없애버릴 방안을 모색합니다. 그들은 ‘그대로 내버려 두면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추종하게 되어, 로마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폭동을 일으킬까 두려워합니다. 또한 로마인들이 성전과 백성을 짓밟아버릴 것을 걱정합니다(11,48).

그러나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의 속내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그분이 하시는 일 또한 자신들이 바라던 정치적 해방과는 무관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에 의해 자신들의 기득권이 침해받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로마의 권력을 의식하고 추종하였습니다. 대사제 카야파는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여,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예수님 한분이 희생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11,50). 그는 예수님의 죽음이, 곧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적 죽음임을 예언한 셈이었습니다(11,51-52).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합니다(11,53).

우리 삶을 성찰해봅니다. 나는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처럼, 하느님보다는 세속의 물질과 권력의 힘에 더 의존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힘을 믿고,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지는 않습니까? 자신의 경험과 지식, 인맥의 힘에 의해, 세상을 움직이고 지배한다고 생각하며 처신하지는 않습니까?

의식적으로 하느님과 무관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하느님을 잊고 움직이고 행동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한국 사회가 더불어 행복하지 못한 것도, 하느님의 선과 정의와 자비를 이루려는 의식 없이, 기득권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고 남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치인들이나 자본가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힘과 재력을, 정의롭고 공평한 방법으로 공동의 선과 유익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악마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들은 어리석고 허망한 세상의 주인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자신의 악행 때문에 영혼의 어둠 속에 머물다, 오직 악행만을 무덤에 가지고 갈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의 힘에 기대어 예수님을 추방하는,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는 말아야겠지요. 나와 이 땅에서 당신의 거룩함과 선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느님과 더불어, 적극적으로 사회변혁을 이루어나가는 새로운 몸짓을 시작해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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