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요한 11,45-5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8 조회수3,491 추천수0 반대(0) 신고

 

 

[사순 제5주간 토요일](요한 11,45-56)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 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49~52)

 

요한 복음 11장 49절과 52절'그해의 대사제', 즉 예수님의 처형이 논의되었던 그 시점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산헤드린 최고의회의 의원들에게 한 말이다.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과 같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간의 의논은 분분하지만, 어떤 구체적인 해결책도 제시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카야파가 나선 것이다. 

 

카야파는 먼저 그들이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하고 있음을 질책하였다. '여러분은 아무 것도 모르는군요."(You know nothing at all)라는 그의 말에 최고 의회 의원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모욕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내노라하는 지성인들인데, 이와 같이 '무식하다'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카야파는 현안 문제를 일사분란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최고 의회 의원들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해결책을 제시하기에 앞서서 그들의 정책적 대안 부재질책했던 것이다.

 

전임 대사제 안나스의 사위이자 후계자로서 18년 동안(A.D.18~36년) 대사제 직책을 행한 카야파가 예수님을 제거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려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그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지위와 특권을 잃고 싶지 않았고, 설사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따르고자 하지 않았다. 종교든, 국민이나 국가를 빙자하든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본질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두가이의 수장인 대사제가, 3년 내내 주로 예수님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바리사이들을 대신하여 서서히 최종적인 박해의 주체로 나타난다. 대사제 카야파는 왜 시원한 대안이 제시되지 못하는지 그 문제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당시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유익하고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고, 태생 소경이 치유되며, 죽은지 나흘이 되어 냄새가 나는 나자로를 살려내시는 예수님께서는 어느 누구보다 백성들에게 필요하고 유익한 존재였다. 

 

하지만 백성들에게 유익할수록 상대적으로는 산헤드린 최고 의회에게는 불리한 존재였다. 예수님의 존재는 자신들의 지배와 기득권적 지위, 가르침과 권위 등 그들이 누리고 있는 기반을 총체적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거할 생각을 하니 명분이 없고, 예수님 편에 서서 명분을 존중하자니 자신들의 재 기반이 위험했다. 이것인 당시 산헤드린 최고 의회의 딜레마였다. 이에 대해 대사제 가야파가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린 것이다.

 

첫째, 그가 내린 처방의 요지는 철저하게 산헤드린 최고 의회의 유익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 의회는 백성들의 유익이나 필요를 고려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며, 또한 무죄하신 예수님을 희생시켜야 하는 데 따르는 양심의 가책을 고려할 필요도 없었다. 

 

둘째,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희생이 불가피한데, 그것은 의외로 간단해서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장에는 백성들에게 큰 호응으로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이러한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호응은 결국 로마인들을 자극하여 민족적 멸망을 자초하게 될 위험한 인물이다. 예수님께 대해서는 이렇게 치부만 하면 그만이고, 그렇게 하고 나면 다음의 일들은 쉽게 진전될 수 있는 것이다.

 

요한 복음 11장 50절'위하여'로 번역된  전치사 '휘페르'(hyper; for)소유격을 지배할 때는 '위하여'라는 뜻도 있지만, '~대신에'(instead of), '~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때문에'(for the sake of) 등의 의미로 쓰인다.

 

그래서 이것을 '백성 앞에', '백성 대신에', '백성을 위하여'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적당한 명분을 내세워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희생시킬 줄 있음을 보여 주는 표현이다. 

또한 '멸망하는 것보다'에 해당하는 '메 ~ 아폴레타이'(me ~ apoletai; ot~perish)에서 '아폴레타이'(apoletai)'아폴뤼미'(apollymi) 부정 과거 가정법 중간태이다. 

 

'아폴뤼미'(apollymi)의 기본적인 뜻은 '파괴되다', '멸망하다', '죽다' 등인데, 부정어 '메'(me; not)와 함께 쓰여서 이것을 부정한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처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70인역 (LXX)에서 이 동사는 히브리어 '아바드'(abad)의 역어로 자주 쓰였는데, '아바드'(abad)역시 '잃어버리다', '멸망하다', '파괴되다'는 뜻으로 쓰인다. 

 

유대교를 상징하는 최고 의회의 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당시 유대교의 도덕성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보여 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대사제의 발언이 거의 비판없이 산헤드린 최고 의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이것을 기점으로 예수님을 죽이려는 모의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카야파는 역사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불경건하고 의롭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대사제인 그를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은 놀랍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과 당신의 백성을 중재하는 임무를 지닌 대사제의 말을 사용하여 유일 중재자요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사명을 밝히는 놀라운 예언을 하도록 하신 것이다. 

카야파는 실제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의 위협을 막고자 예수님을 희생양으로 삼자는 의미로 말했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자신도 깨닫지 못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가장 합당하지 않은 사람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는 분임 악한 자의 말까지도 구속 사업의 의미를 나타내는 데 유용하게 쓰실 수 있는 분임을 발견하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필요에 따라 하느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도 당신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자주 사용하신다(판관3,8.12.13; 4,1~3; 6,1~6; 10,7~9; 13,1; 이사41참조).

카야파는 우리가 아는 대로 예언자가 아님은 물론이고,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술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사도23,3~5참조).


 

 

2010. 3 .27. 사순 제5주간 토요일 - 요한 11,45-56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한17,3)_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