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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4.08)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8 조회수3,007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7년 4월 8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제1독서 에제 37,21ㄴ-28

2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22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23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우상들과

혐오스러운 것들과

온갖 죄악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모든

배신에서 내가 그들을

구원하여 정결하게

해 주고 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24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그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목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내 법규들을 따르고

내 규정들을

준수하여 지키면서,

25 내가 나의 종

야곱에게 준 땅,

너희 조상들이 살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자자손손이

영원히 그곳에서 살며,

나의 종 다윗이 영원히

들의 제후가 될 것이다.
26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27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8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복음 요한 11,45-50

그때에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밟고 말 것이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56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사랑하는 남녀가 있었습니다.

오랜 교제 끝에 둘은

결혼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신랑의 어머니께서

사주를 봤는데 둘의 사주가

너무나 나쁘다는 것입니다.

몇 군데 점집을

돌아다녔지만 하나같이

“1년 안에 헤어질 팔자다,

명이 짧아진다.”

식의 말을 들어서 강력하게

반대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랑의 어머니께서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텔레비전에

출연한 적도 있는 용한

역술인을 찾아갔는데 글쎄

며느리 될 사람에게

돈복이 많다고 결혼시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먼저 봤던 사주대로 이혼이나

누구 한 명이

죽음을 맞이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두 분 모두

건강하게 함께 살고 계십니다.

렇다면 부자는 되었을까요?

이 역시 이 부부에게는

상관없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냥 평범한 중산층으로

잘 살고 계십니다.
자주 점집을 찾아가셨던

시어머니는 이제 점집에

 가시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며느리가 물으니,

“보면 뭐하니.

 하나도 맞지 않던데.”

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네요.
전혀 맞지 않는 말,

그런데 이 한 마디 말에 얼마나

많이 흔들리는지 모릅니다.

 만약 이혼이나 누구 한 명이

죽음을 맞이했다면 “봐라,

역술인의 말을 듣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라고

말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결혼하지 않았는데도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아마도 “결혼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로라도 사는 거야.”

라고 말할 것입니다.
쓸데없는 말에 흔들리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믿지 않아도 될 말,

들어서는 안 되는 말로

내 자신의 활동을 제한 두는

 경우가 있으며, 이러한 말은

 다른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들어야 하고,

또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라자로가 다

시 살아난 기적을 보고도

받아들이지 않는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을 만납니다.

 왜 그토록 놀라운 표징을

보고도 믿지 않았을까요?

 첫 번째는 예수님께 대한

시샘이나 불신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다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유대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로마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서

신앙의 터전인 성전과 나라가

파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대사제

카야파는 말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이 한 사람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따릅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해서

자기 자신과 민족 전체의 안녕이

보장되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적중했을까요?

카야파의 예상은

적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제거하면 성전과

민족이 안전하리라 생각했지만,

 로마인들은 성전을 파괴하고

 민족을 짓밟아서 그곳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냈습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말은 어떤 것일까요?

세상의 관점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오로지 사랑이 가득 담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평화가

보장될 것입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정답을 만들어 가는

과정만 있을 뿐이다.

(박웅현)

요르단강에서 침수하는 사람들.

"길 위의 돌"

(좋은생각중에서)

청년이 랍비에게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랍비는 길 위의

돌이라고 답했다.

청년이 그토록 흔한 게 어찌

 진리냐고 되묻자

랍비가 말했다.

“돌을 주우려고 허리를

구부리는 사람은 드물지.”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평범한 일상도

허리를 구부리면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진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것 같습니다.

진리가 복잡한

이론 안에만 있을까요?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도

다 쉬운 말씀이었습니다.

결코 복잡하고

세상의 관점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통해

말씀하시지 않고

일상의 삶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길 위의 돌이 바로

진리라는 말씀에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 삶 안에서

평범하게 다가오는

진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별 볼 일 없다면서

그냥 발로 뻥뻥 차고

는 것은 아닐까요?

이스라엘의 아침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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