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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수난기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4-09 조회수2,890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주간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성토요일까지이다. 전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생애의 사건을 분명히 기억하고 묵상하며 부활을 맞이하도록 이끈다. 성주간은 교회 전례에서 가장 정점을 이룬다. 또한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지 축복과 행렬로 성전에 입장하여 미사를 봉헌한다.

 

암튼 유다인들은 새 임금이 등장하면 열광하였다. 나뭇가지를 흔들며 환영하였다. 성지의 유래는 여기에 있다. 우리 역시 새 임금을 환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이 기다렸던 이가 아니다. 고통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분이다. 사실 우리도 주님 은혜와 사랑에 기쁨의 나뭇가지를 흔들며 좋아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에 들어서야 할 때 우리는 그분 십자가를 모른 체했다. 예수님께 등 돌리며 십자가 아픔과 고독을 나누지 않았다. 우리들 이익과 쾌락을 위해 그분 계명을 어기고 배반의 행렬에 나섰다. 그분께서는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시어 우리를 속량하셨다. 우리를 향한 한없는 사랑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옆구리에서 피와 땀으로 흘러내렸다. 주님 배반한 우리 삶을 보면서 통회의 눈물을 흘리는 성주간이 되자. 우리의 눈물은 주님 사랑으로 가득 찬 은총의 눈물로 변화하여 우리를 구원하게 될 게다.

 

언젠가 아름다운 한 장의 그림을 보았다. 뒷면에는 기도문이 있었는데, 베드로 사도를 수호성인으로 모신 어느 본당 설립 40주년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 그림은 그리스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활동한 유명한 화가 그레코의 '눈물 흘리는 베드로 성인'이었다. 깊디깊은 슬픔에 잠긴 표정과 애처롭게 보인 눈물 자국 선명한 얼굴, 그 손과 얼굴의 방향이 가리키듯 하늘향한 마음을 포기 못하는 베드로의 그 모습을 거기에서 보았다.

 

그 모습이 다시 선명하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베드로가 닭이 우는 소리에 슬피 울 때이다. 뒤통수 맞는 듯 멍했다. 예수님 체포에서 십자가형으로 이어지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길에서 어디쯤인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뜨거운 눈물이 조금씩 눈과 마음에서 살이 찢기듯 스민다. 주님 수난이 너무 참혹하였지만, 우리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베드로마냥 배반을 뉘우치는 눈물이라는 생각이 더 비통할 뿐이다.

 

사실 예수님 수난 길에는 수많은 이가 있었다. 유다는 배반의 길, 베드로는 스승을 아예 모른단다. 빌라도는 여론에 밀려 사형을 선언을, 그의 아내는 죽이는 일에 관여하지 말란다. 군인들은 하나같이 예수님을 조롱했다. 모두가 비정상이다. 죽음 앞둔 이를 조롱하는 건 비겁하다. 청중들 역시 말없이 구경만 한다. 몇몇 여인들만 두려움에 그분을 따랐다. 거기에는 예수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었으리라. 그러기에 얼떨결에 붙들린 키레네의 시몬은 말없이 십자가를 졌다. 우리 모습은 어떤 이 일지?

 

은돈 서른 닢은 유다 이스카리옷이 예수님을 팔아넘긴 몸값이었다.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을 노예의 몸값으로 쳐서 그에게 주었다. 수난 받는 하느님의 종이신 그분께서 가장 비천한 처지가 되셔서 죄인들을 속량하셨다. ‘베드로의 눈물예수님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이의 눈물이다. 죄를 짓고 뉘우치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신앙인의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바라빠 대신 예수님을 처형하라는 군중의 모습도 우리의 자화상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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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주님 성지 주일,수난,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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